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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엄벌’ 전 어른의 역할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엄마, 학교폭력 관련 기사가 요즘 왜 이렇게 많아?” “아… ‘더 글로리’(넷플릭스 시리즈) 이후에 관심이 커지기도 했고, 최근에 국가수사본부장이라고 중요한 자리에 임명됐던 검사 출신 아저씨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였던 게 알려져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 있었어. 그런데 가해자인 애는 전학 조치 받았는데 잘살았는지 서울대 갔는데, 피해자는 이후로도 계속 힘들어서….”

올해 중2인 딸은 엄마의 설명이 점점 길어지자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근데 학폭은 계속 있었던 거 아냐? 몰랐던 것도 아니고”라며 말을 끊었다. 심드렁한 말투였지만 ‘학폭은 계속 심했고, 가해자만 멀쩡한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우린 계속 힘들었는데 이제 와서 뒷북이냐’는 쏘아붙임이 담겨 있었다. 어른이랍시고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딸은 반에서 이른바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하는 친구 문제 때문에 지난해 내내 학폭 이슈에 예민했다. 당시 상황은 여러 명이 한 명을 노골적으로 싫어한 것인데, 정색하고 학폭으로 신고하거나 문제 삼기엔 좀 모호했다. 아이 역시 그런 점 때문에 더 답답해 했다. 어디서부터 학폭이고 아닌 건지, 언제부터 도움을 요청하거나 도와줘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분명히 상처받아 힘들어하는데, 상처 준 쪽은 특별히 악의가 있다거나 유달리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는 점이 아이를 헷갈리게 했다. 누구든, 자기조차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불안해하기도 했다. 안 되겠다 싶어 담임 선생님께 고민 상담을 해보라고 조언했다. 다행히 ‘선생님도 상황을 모르지 않으며 주시하고 있다’는 답을 들은 뒤에야 아이는 조금 편안해졌고 무사히 1학년을 마쳤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누구보다 많이 고민했던 아이가 학폭 이슈를 먼저 언급한 김에 궁금한 것을 물었다. 가해자 처벌을 강화한다는 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피해자 회복에 더 무게를 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수많은 이들이 대책을 얘기하는데,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청소년의 생각이 궁금했다.

“나도 피해자 회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회복도 잘못을 저지른 애가 제대로 처벌받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는 것 같아. (피해자가) 내 잘못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라 가해자 때문이라는 걸 확인하는 거니깐. 그런 점에서 가해자 처벌에서 제일 중요한 건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야. 그래야 피해자도 용서할 기회를 가질 수 있잖아. 그리고 꼭 가해자가 반성하고 변화할 수 있게 교육했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선생님이나 학폭위가 정말 잘 지켜보고 제대로 판단해줘야 해.” 답변은 생각보다 확고하고 명료했다. 학폭 행위에 대해 ‘엄벌’해야 하는데 그 이유와 방향은 피해자를 되살리고 가해자를 변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 글로리’ 김은숙 작가도 학폭 피해자들을 취재하면서 가해자의 사과가 피해자들이 잃은 인간의 존엄, 영광을 회복하는 시작점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 바 있다.

아이의 답에서 가장 뜨끔했던 건 마지막 말이었다. 엄벌을 위해서도, 제대로 된 사과를 끌어내기 위해서도 중요한 건 ‘누가, 어떻게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아차리고 제대로 판단 내려줄 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건 가해 학생 조치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보존하는 기간을 더 늘리고,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방안이나 법·제도가 생긴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학생 보호와 관리 책임을 진 학교와 교사, 학부모 등 우리 어른들의 감각이 깨어 있어야 한다. 너희를 보호하기 위해 지켜보고, 너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를 열고 있다는 메시지가 있을 때 아이들의 변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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