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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직장동료정권

이영미 영상센터장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해법은 윤석열 대통령 작품이다. 대통령실 설명이 그렇다. 보도를 보면 외교부와 전문가, 보수 원로까지 속도 조절을 조언했다는데 대통령이 밀어붙였다. “지지율 1%가 나오더라도” “비난이 쏟아진다고 해도” 해내겠다는 대통령 의지가 반대를 돌파했다. 의아한 건 이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2년 전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해도 한·일 이슈를 자기 언어로 설명하는 일조차 버거워했다. 외교 용어를 쓸 때는 속성으로 과외받은 티가 확연했다. 그런 대통령이 1년 만에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피해자는 모욕으로 느낄 과거사 해법을 구국의 결단을 하듯 밀어붙였다.

‘30년 검사’ 대통령의 기이한 급발진을 보며 이번 사태가 윤석열정권의 특이한 구성과 관련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됐다. 윤석열정부 내부에 존재하는 철학적 진공, 이번 사건에서는 외교 철학의 진공 상태가 기승전 없는 급반전의 배경일 거라는 추측이다. 정치인들은, 적어도 명분상으로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한다. 윤석열정권이 유별난 건 단시간에 권력을 거머쥔 집단은 있는데 이들 사이에 공유된 정치 신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도, 꼭 이루고 싶은 정치적 목표도 없다. 개인이 아니라 권력 집단으로서 그들을 규정할 단어가 없다. 검찰 출신이란 타이틀 말고는.

1년 전만 해도 예감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윤석열정부가 검찰정권이라는 데 이견은 없을 것 같다. 검찰공화국, 검찰왕국, 검사정권, 검찰카르텔, 검찰인플레이션. 출범 1주년을 맞아 조어도 다양해졌다. 검찰정권의 첫 점령지는 인사. 시작도 끝도 검찰이다. 검찰 출신이 추천하고, 전직 검사가 검증하고, 전직 검사가 임명한다. 그렇게 고위직은 검찰 출신이 장악했다. 법무·통일·국토교통부, 국가보훈처부터 국무총리실, 법제처,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등까지 검찰 출신 장차관급이 13명이다. 피라미드 아랫단도 무한 확장 중이다. 보도되기로는 법무부를 포함해 일반 부처와 외교, 금융, 국회까지 파견 검사가 100명이 넘는다. 양보다 중요한 건 파워. 수사·정보·감찰을 관장하는 핵심 권력기관을 검찰 출신이 틀어쥐었고, 그 위에 대검을 옮겨놓은 대통령실 7인이 포진했다. 꼭짓점은 검찰총장에서 직행한 대통령이다.

이제 검찰정권의 거대한 위용이 드러났다. 아니면 이제 시작일까. 누구는 검찰정권이 정적 제거를 위해 탄압 수사를 한다고 비판한다. 수사(搜査)가 정치를 대신하는 시대를 한탄하는 이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윤석열정권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상한 관료 정부라는 사실이 가장 불길하다. 가진 권력으로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예측 불가능성은 그들에게 공유된 정치 어젠다가 없어 생기는 현상이다. 외교 철학의 진공이 느닷없는 대일 양보로 결론났듯.

직장 동료로 만나 ‘직장동료정권’을 꾸린 검사정부가 공유하고 있는 건 국가 운영의 통치철학이 아니라 협소한 스킬 세트다. 조직을 장악하는 기술, 여론을 움직이는 기술, 언론을 이용하는 기술, 정보를 모으고 정보를 흘리고 정보를 감추는 기술, 법의 구멍을 찾고 법으로 이기는 기술. 검찰 조직이 지난 수십년 갈고 닦은 비장의 생존 스킬이다. 얼마나 유능했는지 검사들은 결국 정부를 검찰 조직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오랜 노력에는 권력욕 대신 다른 이름을 붙여줘도 좋겠다. 이를테면 승진 욕구라든지. 그런 의미에서라면 평검사로 입직해 행정부 수반에 오른 직장 상사가 롤모델이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겠다.

그들의 다음 타깃은 공공연하게 입법부다. 여당 대표 선출로 기초 작업은 끝났고, 남은 건 총선까지 숨죽이고 기다리는 일이다. 검찰이 국회를 휩쓸면 그때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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