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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위해 대륙 가로지르는 여성들… 커지는 갈등, 갈라진 미국

낙태권 금지 판결, 그 후 10개월
美 50개 주 가운데 12곳서 금지
대선 앞두고 다시 ‘뜨거운 감자’

AFP연합뉴스

미국에서 낙태권을 둘러싼 논쟁은 가장 오래된 이슈 중 하나였다. 지난해 6월 미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던 판례인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고 이른바 ‘돕스 대 잭슨 판결’을 통해 기본권에 낙태권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확인했지만, 이로써 낙태권을 둘러싼 논쟁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운 후폭풍이 미국 사회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지역별로 낙태 허용 여부가 다른 탓에 여성들은 미 대륙을 가로질러야 하고, 낙태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는 정치적인 쟁점이 되고 있다.

미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대법원 판결로 각 주마다 법을 제정해 낙태를 전면 금지할 수 있게 된 이후, 현재 미국 50개 주 가운데 12개 주가 거의 모든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특히 보수 성향인 주에선 낙태 금지법을 강화하고 있다. 플로리다주에선 지난 7일(현지시간)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거의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낙태 시술을 받으려는 여성 중 일부는 낙태가 허용되는 지역으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지난 1월 앨라배마주에 사는 36세 칼레타 사익스씨는 3시간30분을 운전해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병원에 갔다. 그러나 임신 6주의 사익스씨는 태아의 심장 활동이 감지될 경우 병원에서 낙태를 금지하는 조지아주의 ‘하트비트 법’ 탓에 시술을 받을 수 없었다. 사익스씨는 다시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병원을 찾았지만 이동 경비를 모으느라 일주일이 더 걸렸다. 그는 “대법원 판결 전에는 집 근처 15분 거리의 병원에서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WSJ는 “낙태가 여전히 합법인 주에 있는 병원들은 수요가 급증해 시술이 지연되고 있다”면서 “많은 병원에서 대기 시간이 몇 주씩 증가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낙태 시술을 받기 위해 더 먼 거리를 이동하고 시술이 지연될수록 임신부의 건강이 더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 전국낙태연맹(NAF)은 낙태가 금지된 주의 여성이 1년 전에 비해 평균적으로 1~2주 늦게 낙태 시술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콜린 맥니콜라스 가족계획협회 세인트루이스·미주리남서부 최고 의료 책임자는 “대법원 판결 이후 일리노이주 남부에 있는 가족계획클리닉에서 임신 2기(중기) 낙태가 두 배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 이후 낙태 알약에 대한 요구도 2배 이상 증가했다. WSJ에 따르면 우편으로 의약품을 배송하는 스타트업인 ‘에이드액세스’에 지난해 6월 판결 이후 2개월 동안 임신중절약(낙태약)을 요청한 주문은 214건으로, 직전 8개월 동안(2021년 9월~2022년 4월) 83건이 요청된 데 비하면 2배 이상 증가했다.

약국에서 알약 판매를 금지하는 경우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미국의 대형 소매약국 체인인 월그린스는 지난 3일 사후피임약의 주요 성분 중 하나인 ‘미페프리스톤’을 캘리포니아 등 20개 주에서 판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월그린스의 이 같은 방침은 지난달 초 공화당 소속인 20개주 검찰총장들이 이 회사와 CVS헬스에 공동 서한을 보내 임신중절약을 해당 지역에서 판매할 경우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데 따른 것이다.

낙태권 보장을 위한 법 개정 요구도 커지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어맨다 주라프스키(35) 등 여성 5명이 지난 7일 텍사스주 법원에 환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긴급상황에서 선의의 판단으로 낙태 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이는 지난해 6월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이후 임신부가 낙태 거부에 맞서 주 정부를 고소한 첫 사례다.

지난달 21일 오하이오주 생식자유 의사회와 오하이오주 의사회는 낙태권을 보호하는 헌법 개정안을 투표에 부치기 위해 주 법무장관에게 서류를 제출했다. 지난해 11월 8일 미국 중간선거와 함께 열린 정책 투표를 통해 버몬트, 미시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낙태권을 주법에 명시하는 것이 결정됐다.

낙태권 논쟁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진영 간 이념 갈등도 거세지고 있다. 공화당을 비롯해 미국의 보수 진영은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이며, 일부는 사후피임약 복용을 포함해 임신중절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민주당 등 진보 진영은 임신중절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결집하고 있다.

낙태권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한번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정치권의 예상과 달리 압승을 거두는 데 실패한 것을 두고 여러 외신은 대법원 판결 이후 여성 유권자를 중심으로 여론의 역풍이 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낙태권 침해로 자극을 받은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주요 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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