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가해자는 꽃길… 피해자는 좌절… 교육부는 갈팡질팡

다시 불거진 학폭… 대학문 더 좁아질까
5년 주기로 논란·대책 마련 반복
대입 엮이면 교육적 해결 어려워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학폭) 파문과 드라마 ‘더 글로리’ 열풍으로 또다시 학폭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학폭으로 아들을 잃은 뒤 다니던 대기업을 관두고 30년 가까이 학폭 근절 활동을 하고 있는 김종기 푸른나무재단 명예이사장이 “5~6년 주기로 학폭 문제가 소용돌이쳤다”(지난 6일 학교폭력 현장 간담회)라고 말한 것처럼, 학폭 사안은 불거질 때마다 공분을 일으켰지만, 여전히 뿌리 뽑지 못하고 있는 난제다.

교육부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교육부 관계자는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정 변호사 아들 학폭 사건에) 크게 분노하면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근본적인 해법을 주문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육부가 내놓은 수많은 학폭 대책 중 ‘근본 대책’이란 슬로건을 내걸지 않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달 말 또는 다음달 초로 예고된 ‘이주호표 학폭 대책’은 지금까지와는 다를 수 있을까.

대학 문은 가해자에게 얼마나 좁아질까

정 변호사 아들 사건이 특히 여론의 분노를 자극한 지점은 학폭 가해자인 아들의 서울대 진학이었다. 정 변호사 아들이 ‘수능 100% 전형’으로 서울대 입학문을 연 사실이 알려지자 정시 전형에 대한 개선 요구가 빗발쳤다. 교육부는 “정시 전형에서도 학폭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라고 호응한 상태다. 교육부와 대학이 어떤 방식으로든 정시에서 학폭 사안을 반영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또 다른 포인트는 정 변호사 아들에게 학폭 피해를 본 학생이 정신적 충격으로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대입에서도 곤란을 겪은 점이다. 정 변호사 아들의 ‘꽃길’과 대비돼 분노를 증폭시켰다. 정치권이나 교육계 일각에서 학폭 피해자를 대입에서 구제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교육부는 말을 아끼고 있다.

정시에 학폭 가해 기록을 반영하거나 학폭 피해자를 대입에서 우대하는 일 모두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정시에 학폭을 반영할 경우 학폭 가해 학생이 대학 가는 길은 사실상 차단된다고 볼 수 있다. 수시모집의 경우 학교생활기록부를 중심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이미 학폭 전력이 대입에 반영되고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정성평가이기 때문에 학폭 사안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로 당락을 가르는 정시까지 반영한다면 학폭 가해자는 수시와 정시 모두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입시 전문가들은 소송 증가를 우려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자녀 앞길이 막히는 상황에서 교육 당국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해 여력이 있는데도 소송을 접을 부모가 얼마나 되겠는가”라며 “재판 진행 중에 정시에서 합격·불합격을 정하는 일도 대학이든 수험생이든 간단한 일은 아니다. (정 변호사 아들) 사례 하나를 갖고 대입에 손대는 것보다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학폭 피해자를 대입에서 우대하는 정책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학폭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학부모와 이를 막기 위한 가해 학부모, 교육 당국 사이에 법적 분쟁이 발생할 거란 우려가 적지 않다. 교육부 관계자는 “모든 방안을 열어놓고 검토 중”이라며 “학폭에 대한 공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특히 대입은 학교 현장에 끼치는 영향이 크고 소송 증가 우려도 있어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폭과 대입의 연대기

학폭을 대입에 반영하는 정책 도입은 이주호 부총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학폭 대책으로 대입을 처음 끌어온 당사자가 이 부총리다. 학폭 가해자에게 대입에서 불이익을 주기 시작한 건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12월 대구에서 학폭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고, 가해학생들의 잔혹한 폭력이 알려지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던 이 부총리는 이듬해 2월 6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현재까지도 학폭 대책의 뼈대가 되는 내용이었다.

이 대책에 가해 학생 조치 사항을 학생부에 반드시 기재토록 하는 내용이 처음 담겼다. 고등학생 때 발생한 학폭은 졸업 후 10년, 초·중학교 때는 5년 동안 가해 기록을 유지토록 하는 매우 강력한 내용이었다. 학교장과 담임교사 책무성 강화, 피해학생 보호 대책, 학교지원경찰관제(SPO) 도입 등 7대 학폭 대책이 함께 나왔지만, 대입에 가려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특히 대입에서 학생부 위주 수시전형 비중이 늘어가던 시기였다. 학생에게는 “학폭 저지르면 대학 못 간다”, 학부모에게는 “학폭 단속 못하면 자녀 앞길 막힌다”는 메시지였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나치다”는 권고를 내고, 시·도교육청에서 부작용을 우려해 학폭 가해사실 기재를 거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자 이 부총리는 “학폭 가해사실 기재 의무를 위반한 교육청과 학교에는 특별감사를 통해 강력한 책임을 묻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 부총리가 ‘학폭 엄벌주의자’로 불리게 된 계기였다.

이후 학폭 예방 수단으로 대입을 활용하려는 정책은 약화됐다.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학폭 전문 변호사들이 생기면서 교육이 사법화됐다는 비판이 컸다. 학교로서는 교육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학폭 관련 업무가 폭증했다. 학부모 민원 등으로 ‘기피 업무 1호’가 됐다. 대입과 엮이면서 교육적 해결은 한층 어려워졌다는 게 교육 현장 반응이었다.

학교 현장 등의 반발로 2012년 6월 학폭 학생부 기재는 고교의 경우 10년에서 5년으로 줄어들었다. 이듬해 ‘현장중심 학교폭력 대책’에선 가해 기록 유지 기간을 5년에서 2년으로 더 줄였다. 지난해 체육특기자 전형에 학폭 이력을 반영토록 하고, 가해자의 전학 기록을 졸업과 동시에 삭제하지 않고 2년은 유지하도록 하는 등 일부 강화하기는 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학폭 이슈가 불거지더라도 대입과 학폭을 연계하는 데는 신중했다. 엄벌주의로 회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셈이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