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이주윤의 딴생각] 옆집에 사는 남동생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그저 하얗기만 한 도화지에도 앞면과 뒷면이 존재한다. 고등학생 시절, 입시 미술 학원에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보기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앞면을 선택하는 편이 좋다. 뒷면에 비해 매끄럽기 때문이다. 도화지의 앞뒤를 구별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연필로 선을 그어 눈으로 확인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표면을 매만지며 손으로 느껴 보기도 한다. 눈썰미도 없고 촉감도 둔한 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가만히 눈을 감고 소리를 들어 보는 것이다. 매끈매끈한 앞면에 선을 그으면 ‘삭삭’ 높은 소리가 나고, 거슬거슬한 뒷면은 ‘슥슥’ 낮은 소리를 낸다.

이다지도 소리에 예민한 내가 서울에 상경했을 때 무한한 해방감을 느꼈던 이유는 귀 따가운 엄마의 잔소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서울은 내가 살던 경기도 끝자락보다 열 배쯤 시끄럽고 백 배쯤 정신없는 도시였다. 어딜 가든 바글바글한 사람들이 와글와글 떠들어대고, 커다란 버스들이 코끼리 방귀 뀌듯 뿡빵거리며 도로를 오가는 데다가,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현란한 유행가 탓에 귀가 편할 날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 새소리를 벗 삼아 살고 싶지만, 하루가 멀다고 로켓 배송을 시켜대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귀촌은 개소리이지 싶다.

왕관을 쓰려는 자가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면 로켓 배송을 이용하려는 자는 도시의 소음을 견뎌야 한다. 하필이면 왕복 팔차선 사거리에 위치한 오피스텔을 얻은 바람에, 게다가 소방서와 종합병원이 지척에 있는 바람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중창이 아니라 홑창인 바람에, 자동차 소음은 물론 사이렌 소리까지 감내하며 사는 중이다. 잠을 자려 자리에 누우면 거짓말 조금 보태 노숙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사를 할까 이따금 고민하기도 하지만 쉬이 실행에 옮기지 않는 이유는 적어도 층간 소음이나 벽간 소음에 시달린 적은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일장일단이 있는 법. 사람 소리에 들볶이지 않는 게 어디란 말인가. 작지만 옹골차게 지어진 이 집이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부동산 앱을 들락거리고 있다. 매일 밤 11시부터 12시까지, 웬 남자의 술주정에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1층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리는 소리가 창문 새로 흘러들어오는 듯했다. “으악, 야야야야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여기로 오라고, 여기로! 아우, 답답해. 내가 콱 죽어버리든가 해야지, 진짜!” 처음에는 받아 주는 이도 없건만 혼자서 펄펄 뛰는 그이가 딱하게 느껴졌다가, 며칠 후에는 어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을까 혀를 내둘렀다가, 열흘쯤 지났을 무렵에는 도대체 뉘신지 그 잘난 얼굴을 보려고 창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미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부득부득 이를 갈던 어느 날 밤 또다시 그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런데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 보니 그 소리의 근원은 창밖이 아니었다. 옆집, 바로 옆집이었다. 벽에다 귀를 가져다 댔다. 술주정인 줄로만 알았던 그이의 혼잣말은 헤드폰을 쓴 채 게임을 하며 친구와 주고받는 과격한 대화였다. 오호라, 잘 걸렸다. 인터넷에서 본 효과적인 경고 쪽지 쓰는 방법을 드디어 써먹을 때가 왔구나. 길을 걷다 받은 일수 광고지 뒷면에다가 깡패 같은 글씨체로 ‘그동안 많이 참아 왔습니다. 더는 자극하지 마세요’라고 갈겨쓰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벽간 소음이 심한데 그동안은 어째서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

그제야 나는 알았다. 옹골찬 집이라서 조용했던 게 아니라 대화를 주고받을 사람 없이 혼자 사는 탓에 적막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와 고작 한 시간, 취미 생활을 즐기며 피로를 풀려는 사람에게 그마저도 즐기지 못하게 한다면 얼마나 숨통이 조일까. 나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목소리 큰 남동생과 한 지붕 아래 산다고 말이다. 얄미워 죽겠지만 마음 넓은 누이가 참아 줘야지. 그런데 내 동생도 이런 나를 닮아 이해심이 깊은 듯하다. 밤이면 밤마다 적적함을 이기지 못해 목청껏 부르던 이 누나의 노래를 못 들은 척해주다니. 미안하고 고맙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이주윤 작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