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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의 헌책방] 헌책방 데이트 대작전(전편)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조용한 오후, 헌책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누가 봐도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어린 남자다. 순간적으로 나는 문 쪽을 슬쩍 바라보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저 사람은 누구일까, 왜 왔을까, 딱히 책을 살 것 같지도 않은 느낌인데, 설마 잡상인은 아니겠지? 절대 그럴 리 없다. 잡상인치고는 너무 어려 보이니까. 아니지, 편견을 버려야 한다. 특히 책을 팔고 있는 가게 주인이라면 더욱 인문학적인 마인드로 모든 손님을 편견 없이 맞이해야 할 것이다. 엄청난 동안의 잡상인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잡상인만큼은 아니길 빈다. 오늘 처음 맞는 손님이니까 웬만하면 제대로 된 방문자이길 바란다.

나의 빛나는 추리력은 약 5분 후에 반만 맞고 반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일단 잡상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고등학생인 것은 맞았다. 그런데 이 학생의 용건이 좀 특이했다. 수줍게 책을 둘러보더니 대충 아무 책이나 골라 들고 내게 와서 계산을 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부탁 하나를 들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부탁 내용은 이렇다. 자신은 근처 학원에 다니는 고등학생인데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있어서 이번 주말에 고백할 작정이라는 거다. 그런데 여학생은 책을 좋아하는지 쉬는 시간마다 소설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실은 그 모습에 반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남학생은 교과서조차 귀찮아하는 부류다. 그래서 주말에 여학생과 이곳 헌책방에서 데이트 약속을 할 테니까 주인장인 내가 자신이 마치 책방의 오랜 단골인 것처럼 연기를 해 달라는 거였다.

“길어봐야 한 30분 정도만 여기에 있다가 저녁 먹으러 갈 거니까 부탁 좀 드리면 안 될까요? 제발요, 사장님.”

이 남학생의 귀여운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줄 수도 있겠지만, 왜 하필이면 헌책방에서 데이트를 하려는 걸까? 나는 학생에게 누추한 헌책방보다는 근처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으니까 거기서 데이트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남학생은 “던전에서도 만남을 추구하는 마당에 헌책방에서 여학생을 만나는 게 이상할 것 없잖아요?”하며 애원했다. 이 말은 요즘 인기 있는 라이트 노벨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를 패러디한 것임이 분명하다. 책을 안 좋아한다면서, 이 녀석 제법인걸?

하긴 몇 년 전에 있었던 더 충격적인 일을 떠올려 보자.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곳 헌책방에서 무려 웨딩 콘셉트 촬영까지 했다. 신부 드레스를 입고 헌책방에서 사진을 찍겠다니, 처음엔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책을 워낙 좋아하는 분이라 허락했던 일이 있다. 웨딩 촬영에 이어 헌책방과 청소년 커플의 만남이라니, 얼마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란 말인가!

학생 말대로 30분 정도면 그리 신경 쓰일 만한 시간도 아니고 재미있겠다 싶어서 나는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비 효과라고 했던가, 이 30분이 얼마나 큰일로 이어지게 될지는 그때에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다음번 글에서 후편 계속).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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