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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지난 2월 초 시작된 SM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대한민국을 거대 리얼리티 쇼의 한복판으로 이끌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플랫폼을 대표하는 이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카카오, 하이브, SM이 모두 등판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인터넷 뉴스난의 연예면을 하루의 디저트로 삼는 사람들, 돈 냄새가 난다고 하면 어디든 기막히게 몰려드는 선수들까지 총출동했다. 회사를 대표하는 얼굴인 창업주와 회사 경영진 간의 마찰과 이탈, 경영권을 타사에 이양하기 위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그를 막기 위한 창업주의 가처분 신청에 이어 업계 내 경쟁 상대라 여겨지던 이에게 자신의 회사 지분 전부를 넘기는 드라마틱한 전개까지. 쓰라고 해도 쓸 수 없는 시나리오라는 말이 괜스럽지 않았다.

단계별로 자극의 역치를 시험하는 상황은 점점 극단으로 치달았다. 카카오와 하이브 양사가 매일같이 내놓는 각종 입장문에서 내밀한 내용이 담긴 영상 공개까지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 인수에 유리한 고지를 잡기 위한 주식시장의 의심스러운 움직임도 수차례 포착됐다. 한쪽이 패 하나를 내놓으면 다른 한쪽이 새로운 패를 꺼내 들고, 상대방은 질 수 없다는 듯 다시 새로운 패를 던지는 형국이었다. 덕분에 인수전이 절정에 달한 3월 8일, 1월 초만 해도 7만원대 중후반을 오가던 SM 주가는 무려 두 배에 달하는 15만8500원까지 치솟았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쩐의 전쟁’으로 바뀌었다.

이러다가 남는 건 ‘승자의 저주’뿐일 거라는 웅성거림이 커지던 순간, 카카오와 하이브 양사가 극적 합의를 이뤘다. 시장의 과열 양상을 봐도, 많은 이들이 자기식대로 점쳤던 ‘K팝의 미래’를 생각해도 여러모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서로의 입장과 성장을 존중하고 지원하겠다는 상당히 이상적인 입장문이 발표됐다. 협의의 골자는 카카오가 경영권을,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취하는 형태였다. 카카오로서는 목표로 했던 SM 인수를 통해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경쟁력과 가치를 높였고, 하이브는 현재 운영 중인 팬 플랫폼 위버스를 전 세계의 다양한 팬덤을 아우르는 멀티 플랫폼으로 확대할 튼튼한 발판을 확보한 셈이었다. 자신의 회사 지분을 깔끔하게 넘기고 새 출발 아닌 새 출발을 하게 된 이수만 SM 전 총괄까지 모두가 원하는 걸 가져갈 수 있었던 게임이었다는 훈훈한 평이 이어졌다.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평화로운 마무리였다.

모두가 각자의 방석과 의자를 들고 다른 구경거리로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지금, 만약 당신이 K팝과 한국 문화 콘텐츠의 가치에 정말 관심이 있다면 주목해야 할 건 오히려 지금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한 달이 넘게 이어진 혼란 속 대부분의 사람이 주목한 건 오가는 돈의 액수나 승자의 이름이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이 거대한 판을 만든 문화적 가치가 어디에서 기인했느냐였다. 어느새 국내가 아닌 세계를 타깃으로 움직이고 있는 K팝 시장, 그를 튼튼히 뒷받침하는 완성도 높은 콘텐츠와 헌신하는 아티스트, 비즈니스라는 단어 사이에 숨어 잘 보이지 않지만 여론 형성에서 주주 자리까지 그 누구보다 촘촘히 자리한 팬까지.

그런 의미에서 상황이 마무리된 뒤 관훈포럼에 참여한 하이브 방시혁 의장이 전한 말은 특별한 울림이 있었다. 그는 ‘우리의 본질은 아티스트와 팬들의 행복이며, 인수전으로 혼란을 겪었을 아티스트와 팬들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퍼포먼스로 보였을지도 모를 이 말은, 그 자체로 누군가를 향한 사랑과 응원으로 다져진 이 산업의 정확한 뿌리였다. 이제 ‘팝콘 타임’은 끝났다. 산업의 근간이 만들어내는 역학과 시너지를 면밀히 파악하는 자만이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지금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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