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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전 세계 은행들 여진

美 기준금리 인상 속 금융위기 공포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위기 공포’가 열흘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미 금융당국의 발 빠른 대응으로 사태 확산은 일단 막았지만, 이후에도 세계적인 투자은행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가 휘청이는 등 여진이 끊이지 않는 모양새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금리 인상 국면에서의 유동성 리스크 관리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발 빠른 대응에 사태 확산은 막아


지난 10일(현지시간) 금리 인상 국면을 버티지 못한 SVB가 ‘뱅크런’(대규모 인출) 발생 36시간 만에 파산하며 이번 사태는 막을 올렸다. 미국에서 16번째로 자산규모가 큰 이곳은 일반 개인 고객보다는 IT 기업이나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던 은행이다.

고객의 예금으로 미국 국채를 대량 구매했던 SVB는 지난해부터 거듭된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금리가 오르고 투자가 줄어드니 기업들은 맡겨 둔 예금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SVB는 재원 마련을 위해 보유 국채를 매각해야만 했다. 문제는 국채 가격이 금리 상승에 따라 떨어지게 돼 있다는 점이었다. SVB는 매각 과정에서 18억 달러에 이르는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미 금융당국의 대처는 신속했다.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예금액 전액을 보증하겠다며 재빠르게 진화에 나섰다. 19일에는 미 금융당국이 SVB를 조속히 매각하기 위해 분할 매각을 시도하려 한다는 블룸버그통신 보도도 있었다.

해결되는 듯했던 사태는 스위스로 불똥이 튀었다. 스위스의 대형 투자은행 CS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9대 투자은행으로 꼽히는 CS가 문을 닫는 것은 SVB 파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형 사태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CS의 위기는 금리 인상과 기존의 부실 경영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말에도 이미 잇따른 투자 실패로 금융위기 이래 최악의 영업 실적을 기록했다. 여기에 지난 14일 발표한 2022년 연례보고서에서 “회계 내부 통제에서 ‘중대한 약점’을 발견했고, 고객 자금 유출을 아직 막지 못했다”는 내용이 밝혀지며 위기가 본격화됐다. 그다음 날인 15일 뉴욕 증시에서 CS의 주가는 한때 전날보다 30%가 넘게 폭락했다.


하지만 스위스 금융당국 역시 발 빠르게 대응했다. 스위스중앙은행은 사태 직후 최대 500억 스위스 프랑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후에도 상황이 진정되지 않자 19일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가 직접 CS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꺼지지 않은 유동성 위기

그럼에도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SVB 이후에도 시그니처 은행, 실버게이트 은행 등 중소형 은행들이 연달아 문을 닫았다. 미국 대형은행들이 300억 달러를 투입해 공동 구제에 나선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신용등급이 B+ 등급까지 7단계나 추락했다. 일각에서는 끊이지 않는 여진을 보며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서 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공포를 연상하고 있다. 당시에는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며 저소득층 주택담보 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이 일거에 부실 채권으로 전락했고 대형 금융기관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한국 금융당국은 상황이 당시처럼 악화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국민연금이 CS와 SVB, 시그니처은행에 모두 2783억원 규모의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를 제외하면 사태가 국내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4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향후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해야겠지만 현재까지는 국내 금융시장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0일 “고금리 국면이 이어지면서 취약 지점들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드러난 위기들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각국 금융당국의 대처도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 둔화로 이어질 수 있어 우리 입장에서도 꼭 나쁜 상황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자신감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달리 안정적이라는 점에서도 기인한다. 한국의 대외 순금융자산은 지난해 말 7466억 달러를 기록해 2년 연속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금융위기 발발 당시인 2008년 3분기의 대외 순금융자산은 마이너스 1058억 달러였다. 지난달 외환보유액 역시 4252억9000만 달러로 2008년 8월(2432억 달러)의 배에 가깝다.

다만 경기 자체는 2008년보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이다. 올 상반기는 금리 인상과 반도체 부진의 여파로 이미 상저하고 국면이 예상돼 있었다. 2008년처럼 중국발 경제 성장에 힘입어 위기를 탈출하는 그림도 쉽게 그려지지 않는 상태다. 중국의 한국 의존도가 이전보다 내려갔고,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도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제2의 ‘리먼 사태’를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금리 인상 국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동성 위기에 대해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각국 금융당국의 통제가 안정적이고,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전세계적 위기로 번질 상황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앞으로도 금리가 오르면 이 같은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면밀히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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