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데스크시각] WBC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

모규엽 문화체육부장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어제 일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일본은 ‘드림팀’ 미국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며 14년 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특히 일본 마무리로 나온 오타니 쇼헤이가 마지막 타자로 나선 빅리그 최고 타자 마이크 트라웃을 시속 164㎞ 광속구로 요리하고 포효하는 장면은 백미였다.

이틀 전 일본과 멕시코의 준결승 때도 명승부가 펼쳐졌다. 일본은 0-3으로 끌려가던 7회말 스리런포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4-5로 뒤져 패색이 짙던 9회말 무라카미 무네타카의 끝내기 안타로 6대 5 대역전극을 펼치며 결승에 진출했다.

일본의 이 같은 선전이 솔직히 부러웠다. 2000년대 초만 해도 한국 야구는 일본 야구와 자웅을 겨뤘다. 2006년 제1회 WBC에선 비록 준결승에서 패했지만 대회 기간 일본과 세 번 맞붙어 2승1패를 거뒀다. 2라운드에선 세계 최강 미국까지 7대 3으로 대파하기도 했다. 당대 스타인 스즈키 이치로가 “앞으로 30년 동안 일본 야구를 이기지 못하게 해주겠다”는 망언을 퍼부었지만, 한국은 실력으로 이치로의 코를 납작하게 해줬다. 2009년 제2회 대회 때도 한국은 일본과 1·2라운드에서 2승2패로 팽팽히 맞섰다가 결승에서 아쉽게 질 정도로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국 야구는 나락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대회에서 한국 야구는 ‘처참함’ 그 자체였다.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호주에 무너졌고, 맞수였던 일본에는 콜드패 위기까지 가는 졸전 끝에 9점 차 대패를 당했다. 목표였던 4강은커녕 8강에도 오르지 못하고 탈락했다. 일찌감치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한국 대표팀은 마지막 경기를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귀국 비행기 티켓을 구했다. 졸전을 펼친 한국 야구에 국민과 팬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공을 가운데로 던지지도 못한다” “선수들 연봉에서 ‘0’자 하나를 빼야 한다” 등 비난 일색이었다.

이번 대회로 드러난 한국 야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강속구 투수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최근 세계 야구의 흐름은 강속구다. 하지만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 시속 150㎞ 이상을 정교하게 던질 수 있는 투수는 안우진과 고우석, 일부 신인 선수들을 포함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렇다 보니 이번 WBC에서 한국 투수들은 밋밋한 공을 던져 난타를 당하고, 빠른 공에 적응 못한 타자들은 헛스윙을 남발하기 일쑤였다. 얕봤던 호주전에서도 한국 타자들은 시속 150㎞ 이상을 던진 호주 마운드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또 한국 야구는 세밀함과 훈련이 사라졌다. 2010년 이후 한국 야구계는 이상하리만치 작전야구와 강훈련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힘으로 안되면 정교함과 피나는 훈련으로 맞서야 하는데 지도자들마저 이를 무시하거나 주저하는 모습이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프로야구에선 10개 구단 체제 이후 선수 수급 문제로 실력이 하향평준화됐다. 당연히 선수 몸값 거품은 심각한 상태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50억원은 그냥 껌값이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라는 점을 망각한 일부 선수들의 자만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1·2회 WBC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인식 전 감독은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는 선수와 지도자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일부 선수가 받는 돈에는 거품이 있고,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실력에도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이제 곧 프로야구가 개막한다. 그래도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만큼 당분간은 많은 관중이 몰려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흘러간다면 관중은 결국 프로야구를 외면할 것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모규엽 문화체육부장 hirt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