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하루아침 ‘휴지조각’된 CS 채권… 금융시장 “나 떨고 있니”

[스토리텔링 경제] 글로벌 리스크 커지는 채권투자


한번 깨진 신뢰는 온전히 회복하기 어렵다. 안전자산으로 철석같이 믿었던 채권에 투자했는데, 결과적으로 주식 투자자보다 손실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 어떨까. 시장의 상식을 깬 일이 연달아 국내·외 채권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경쟁사인 UBS에 30억 스위스프랑(약 4조2400억원)에 매각됐다. 이 과정에서 스위스금융시장감독청(FINMA)은 CS가 발행한 160억 스위스프랑(약 22조65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AT1)은 전액 상각 했다. 하루아침에 가치가 0원이 돼 ‘휴지조각’보다 못한 신세가 됐다. 반면 CS의 주주는 22.48주당 UBS 주식 1주를 받게 됐다. 이는 자본구조 서열상 주식 투자자보다 변제 우선순위에 있는 채권자들에게 더 큰 손실을 매긴 이례적인 사례다. 국내·외 채권 시장의 추가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CS 채권 판단 합리적인가

스위스 당국의 결정이 합당한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이번에 상각된 신종자본증권은 영어 약어를 줄여 ‘코코(CoCo)본드’라고 불린다. 은행 자본구조가 취약해질 때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상각돼 부채를 탕감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건전성이 중요한 은행이 ‘완충재’로 즐겨 발행해왔다. 후순위채보다 위험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수익률이 높아 투자자도 코코본드를 찾았다.

이번에 상각 처리된 CS의 코코본드의 경우 ‘국가 지원책이 있으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는 조항이 있어 채권자의 손실 부담이 당연하다는 게 스위스 당국의 설명이다. 실제로 스위스 중앙은행은 앞서 UBS와 CS에 각각 1000억스위스프랑(약 141조6000억원) 한도로 유동성을 공급한 바 있다. CS 인수로 인한 위험도 90억 스위스프랑(약 12조7400억원) 한도로 보증을 제공했다.

논리는 이렇지만 이를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던 채권 투자자는 없다. 로이터통신은 로펌 ‘퀸 이매뉴얼 어콰트 앤드 설리번’을 인용해 CS 코코본드 투자자들이 가능한 법적 조치를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코본드가 위험성이 있는 투자처는 맞지만, 주식보다 위험하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강승연 DS투자증권 연구원은 “통상적으로 코코본드는 자본구조 서열상 주주보다는 우선순위의 권리를 지닌다”며 “자본시장의 관례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코코본드 투자심리를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잊힐 때 또 터진 시장 상식파괴

국내 투자자는 채권에 대한 신념이 깨지는 경우를 벌써 세 번째 목격하게 됐다. 지난해 9월 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 불이행(디폴트) 사태가 그 첫 번째다. 국채에 버금가는 수준의 신뢰도를 자랑했던 지방채의 믿음을 깨부수는 일이었다.

이어 11월 흥국생명이 5년 만기가 돌아온 외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 상환권(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미룬 일이 두 번째였다.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는 통상 5년마다 조기상환 하는 시장의 상식을 저버린 일로 도마에 올랐다.

CS 코코본드 전액 상각 조치로 국내 은행 코코본드 투자자의 불안감도 고개를 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4대 금융지주(KB 신한 하나 우리)가 발행한 코코본드 잔액은 약 15조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은행의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거나, 예금 등 채권의 지급이나 차입금 상황이 정지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온다면 마찬가지로 코코본드가 상각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시중은행이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은 작다고 분석했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은행의 경우 지속적인 당기순이익을 통해서 자기자본과 규제자본 비율을 높여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내 은행의 코코본드 상각 가능성은 유럽 은행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달 채권 거래 ‘뚝’

더 큰 문제는 CS 코코본드의 ‘나비효과’가 어디까지 퍼질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먼저 CS 코코본드를 대규모로 보유한 다른 은행들의 추가 부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중소형 은행에 대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우려도 존재한다. 회사채 조달 비용이 커지면서 당장 기업의 신용경색 등 경영상 어려움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시장 우려감은 이미 수치로 나타났다. 이날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20일까지 전체 채권 회전율은 9.87%로 집계됐다. 회전율은 발행 잔액 대비 거래량의 비율을 뜻한다. 이 수치가 높으면 투자자 간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 손바뀜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금투협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6년 11월 이후 최저치고, 회전율이 10%를 밑돈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시장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었던 시기인 지난해 10월(12.06%)보다도 2%포인트 이상 낮은 수준이다. 최근 시장에 충격을 주는 이벤트들이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이 채권 거래 자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CS 코코본드 후폭풍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영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가장 직접적인 타격은 당연히 유럽 코코본드 시장에서 나타날 것이지만, 전 세계 시장으로 확산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글로벌 코코본드 규모는 2750억 달러(약 360조원)에 육박한다. 이 규모의 채권이 위협받는다면 대량 투매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