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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주역들이 껴안고 울었던 뮤지컬 ‘마리 퀴리’

동명 韓창작뮤지컬 라이선스 버전으로
호평에 많은 관객, 내달엔 오사카 공연
방사능 위험성 등 어두운 부분에 초점

일본 엔터테인먼트 회사 아뮤즈가 제작한 뮤지컬 ‘마리 퀴리’의 한 장면. 스즈키 유미가 연출한 이번 작품에서 마리 역은 마나키 레이카, 안느 역은 시미즈 구루미가 맡아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아뮤즈-라이브㈜ 제공
지난 20일 일본 도쿄 텐노즈 은하극장. 일본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 아뮤즈가 제작한 뮤지컬 ‘마리 퀴리’가 무대에 올랐다. 스즈키 유미가 연출하고 마나키 레이카, 시미즈 구루미, 가미야마 류지, 야라 도모유키 등의 배우들이 출연한 이 작품은 지난 13일 개막 이후 호평이 이어지며 관객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날도 746석의 객석이 90% 가까이 찼다. 26일까지 도쿄 공연을 마친 뒤엔 4월 20~23일 오사카 우메다 예술극장으로 무대를 옮긴다.

이 작품은 바로 동명 한국 창작뮤지컬의 일본 라이선스 버전으로 선보인 것이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한국 공연 제작사 라이브㈜가 2018년 트라이아웃 공연을 한 뒤 2020년 초연한 작품이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과학자 마리 퀴리를 다뤘지만, 여성이자 이민자로서 쉽지 않았던 삶과 라듐 발견 이후 방사능의 위험성에 고민하는 모습 등 어두운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초연 당시 한국 뮤지컬계에서 드물게 여성 중심 서사극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 2021년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 연출상, 극본상, 작곡상, 프로듀서상 등 5개 주요 부문을 휩쓴 바 있다.

일본 버전은 라듐 악용하는 기업가 부각

한국 버전은 마리 퀴리와 ‘라듐 걸즈’, 즉 방사능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안느 코발스키의 우정과 연대가 두드러졌다. 이에 비해 일본 버전은 라듐을 악용하는 기업가 루벤이 강조되는 한편 퀴리 부부의 사랑이 매우 따뜻하게 그려졌다. 특히, 출연자를 늘리고 영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덕분에 작품이 보다 설명적이게 됐다. 여기에 루벤이 허구적 인물이라는 것을 관객이 알 수 있도록 과장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일본 뮤지컬계에서 손꼽히는 여성 연출가로 한국 창작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 일본 버전을 연출한 적 있는 스즈키 유미는 “한국 창작진이 보여준 원작의 매력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일본 관객에게 맞춰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면서 “일본 관객은 고증에 엄격한 편이어서 허구의 인물인 루벤을 좀 더 과장되게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창작 뮤지컬의 매력은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점”이라면서 “이번 일본 초연에선 시간상 기회가 없었지만, 재연이 이뤄진다면 한국 창작진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업에 반영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20일 뮤지컬 ‘마리 퀴리’ 일본 버전이 공연 중인 도쿄 텐노즈 은하극장에서 한국 주역과 일본 주역이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옥주현(왼쪽부터), 시미즈 구루미, 마나키 레이카, 이봄소리, 김소향. 아뮤즈-라이브㈜ 제공

이날 공연에는 뮤지컬 ‘마리 퀴리’의 한국 창작진인 작가 천세은, 작곡가 최종윤, 연출가 김태형, 프로듀서 강병원이 함께했다. 또한 마리 퀴리 역을 연기한 김소향과 옥주현, 안느 코발스키 역을 맡았던 이봄소리는 공연을 본 뒤 커튼콜 때 무대에 올라가 일본 배우들과 함께 관객에게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양국 버전의 여주인공들은 무대에서 서로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김소향 옥주현, 일본 배우들과 커튼콜 참여

마리 퀴리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남편 피에르 퀴리의 모습. 아뮤즈-라이브㈜ 제공

뮤지컬 ‘마리 퀴리’의 트라이 아웃 공연부터 주역을 맡아 초연과 재연까지 모두 함께한 김소향은 미리 준비한 일본어로 인사를 한 뒤 “이 작품이 한국에서 여러 과정을 거치며 아름답게 완성됐다. 배우로서 그 과정에 참여하며 큰 보람을 느꼈었다. 그래서 이번에 일본 버전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서 더더욱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이봄소리는 “한국 버전을 토대로 하되 일본만의 해석이 담긴 공연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일본 배우들이 정말 성심을 다해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날 커튼콜에서 유난히 눈물을 많이 흘린 인물은 일본 버전의 마리 퀴리를 연기한 마나키 레이카.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으로 일본 뮤지컬계 스타 중 한 명인 마나키는 공교롭게도 옥주현이 연기했던 뮤지컬 ‘엘리자벳’ ‘마타하리’를 연기한 바 있다. 또 한국에 옥주현의 공연을 보러올 만큼 팬이기도 하다. 마나키는 “한국에서 ‘마리 퀴리’ 공연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던 만큼 일본 버전의 주인공을 맡게 돼 정말 기뻤다. 한국 창작진과 배우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이 떨리기도 했지만 감동적이기도 하다”고 글썽였다. 공교롭게도 이날 생일을 맞아 공연에 앞서 일본 배우들로부터 깜짝 생일 축하를 받은 옥주현은 “‘마리 퀴리’ 일본 버전을 보면서 언어는 다르지만 느끼는 감동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인사를 전했다.

일본에 ‘마리 퀴리’ 공연권을 판매한 라이브㈜는 해외시장에 가장 많은 한국 창작뮤지컬을 선보인 국내 제작사다. 2013년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를 시작으로 ‘마이 버킷 리스트’ ‘팬레터’ ‘랭보’ ‘마리 퀴리’까지 5편을 오리지널과 라이선스 형태로 일본과 중국, 대만에서 선보였다. 올해 ‘마리 퀴리’ 일본 라이선스 공연 외에 ‘팬레터’와 ‘마이 버킷 리스트’가 중국에서 각각 라이선스 버전으로 14개 도시와 11개 도시 투어가 진행 중이다. ‘마리 퀴리’의 경우 폴란드에서 지난 2021년 영상 상영회, 지난해 초청 콘서트를 가진 뒤 내년 비알리스톡 포들라스카 극장에서 라이선스 공연으로 선보인다. 마리 퀴리의 고국인 폴란드에도 한국 창작뮤지컬 대본과 음악이 로열티를 받고 수출된 것이다.

내년 폴란드 라이선스 공연으로 유럽 진출 시동

라듐 방사능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의 모습. 아뮤즈-라이브㈜ 제공

강병원 라이브㈜ 대표는 “‘마리 퀴리’가 지난해 폴란드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에 초청돼 김소향 등 배우들의 미니 콘서트와 함께 공연 실황을 상영했는데, 관객과 관계자들로부터 정말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당시 폴란드에 거주하는 마리 퀴리의 후손들도 보러 와서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라이브㈜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영미권에 우리 창작뮤지컬을 진출시키려고 노력 중”이라며 “‘마리 퀴리’의 경우 지난해 영국 런던 쇼케이스에서도 호평을 얻은 뒤 현지 관계자들로부터 라이선스 문의를 받기도 했다. ‘마리 퀴리’의 내년 폴란드 공연은 우리 창작뮤지컬의 유럽 진출을 본격화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뮤지컬 ‘마리 퀴리’ 일본 버전을 제작한 아뮤즈는 한국 창작뮤지컬의 해외 진출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나섰을뿐만 아니라 그동안 가장 많은 작품을 자국에 선보였기 때문이다. 아뮤즈는 2006년 한국 제작사 윤스칼라와 손잡고 창작뮤지컬 ‘겨울연가’를 일본에서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2007년 PMC 프로덕션의 ‘달고나’ 라이선스를 구입해 일본 버전 ‘라무네’를 만들었다. 이후 2013년 도쿄에 전용극장을 만들어 1년간 ‘총각네 야채가게’ ‘형제는 용감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등 창작뮤지컬 9편을 선보인 바 있다. 오사토 요키치 아뮤즈 회장은 이날 ‘마리 퀴리’를 제작한 강병원 대표에게 “‘마리 퀴리’가 내년에 폴란드에서 공연되는 등 한국 창작뮤지컬이 해외에 수출되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면서 “앞으로도 뮤지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싶다”고 피력했다.

도쿄=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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