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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고자극 콘텐츠의 시대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대중문화’라는 말이 유명무실해져 가는 시대다. 불특정 다수를 뜻하는 대중이 한 번에 열광하는 콘텐츠는 이제 지구상에서 멸종했다. 시청률 60∼70%가 넘는 드라마도, 10대부터 70대까지 전 국민이 아는 가요도 없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가장 큰 공신은 채널의 다양화다. 채널별로 쏟아지는 콘텐츠는 이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따라가려 해도 24시간이 부족하다. 1.2나 1.5 배속으로 영상을 보는 시청 방식이나 총 10시간이 넘는 시리즈물을 1시간 내외로 편집해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이 유행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기 콘텐츠의 기준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화제작 대부분은 숫자만 크고 파급력이 작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보다는 소수 정예라도 화력이 좋은, 충성도 높은 팬덤을 만드는 데 성공한 콘텐츠였다. 방영과 동시에 해당 콘텐츠에 대한 언급으로 SNS와 커뮤니티를 장악하는 것은 물론 보통 ‘영업’이라 불리는 콘텐츠 홍보를 위해 5분 대기조처럼 유입을 기다리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최근 이 기준을 빠르고 거칠게 파고든 키워드는 ‘고자극’이다. ‘힐링’이나 ‘웰빙’이 대세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사람들은 웬만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강철 심장과 강철 뇌를 보유하게 됐다. 그 금강불괴 같은 단단한 틈을 뚫고 성별과 연령을 초월해 폭발적인 흥행을 이끈 상반기 대표 콘텐츠 가운데 드라마 ‘더 글로리’와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 100’이 있다.

이 두 작품이 불러온 열풍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스타 작가 김은숙의 드라마를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사람도, 머리 쓰는 내용이 아니면 도통 재미가 없어서 볼 수가 없다는 사람도 그 두 프로그램에만은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지난해 12월 30일 파트 1을 공개한 드라마 ‘더 글로리’는 3월 10일 파트 2를 공개할 때까지 화제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학교폭력을 주요 테마로 평생을 건 한 사람의 복수 여정을 따라가는 스토리는 잔인한 폭력 묘사나 강도 높은 복수로 끊임없이 논란을 만들면서도 승승장구했다. 수위를 납득하게 만드는 악역들의 순도 높은 연기와 플랫폼이 담보하는 자유를 기반으로 자극의 역치를 시험하는 듯한 대사에서 연출까지 찰지게 맞아떨어진 덕분이었다.

‘피지컬: 100’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주 일요일을 책임지던 국민 예능 프로그램 ‘출발 드림팀’을 연상시키는 세트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실사판이라는 평 아래, 속을 채운 건 선정성이나 폭력성의 수위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날것의 무언가였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날것’은 ‘몸’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한 짝이다. 격투기 선수 추성훈이나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 같은 유명인도 있었지만 발레리노나 모델, 댄서, 스턴트맨 같은 몸에 자신 있는 일반인 출연자가 대다수였다. MBC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지만 방영 채널이 지상파가 아니었던 만큼 욕설이나 노출을 검열할 필요도 없었고, 남녀 구분 없이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1대 1 게임도 굳이 피할 필요가 없었다. 노리지 않아도 자극은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그래서 재미있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재미는 있었다. ‘피지컬: 100’을 영업한 친구와 밤새 수다를 떨었고, ‘더 글로리’ 시즌2가 공개되는 날 맥주와 안주를 쌓아두고 기다렸다. 공산품에 익숙해진 혀가 맵고 달고 짠 것을 맛없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담론의 시대에서 취향의 시대, 규제보다는 자율을 추구하는 흐름 속에서 이제 와 에헴 곰방대를 털며 ‘그래도 그러면 쓰나’ 하는 고리타분한 소리만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렇게 급격히 수위를 올리는 자극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가는 개인이, 또 사회가 꾸준히 의식해야 한다고는 꼭 말하고 싶다. 고찰하지 않는 자극의 끝은 중독뿐일 테니 말이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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