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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불평불만 국가로 계속 살 건가

천지우 정치부 차장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한국 연예인들이 일본에 가서 일본 음식을 먹으며 맛있다고 호들갑 떠는 프로그램이 한둘이 아니다. 이걸 보고 여행 욕구가 생겨 일본행 항공기 티켓을 끊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극장가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례 없는 인기다. 스포츠 쪽에선 ‘성웅 오타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최고 스타 오타니 쇼헤이에 대한 상찬이 이어졌다. 일본 친화적인 정책을 펴도 될 만한 여건이 마련됐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테다.

한국갤럽이 지난 24일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한 달 만에 반등해 34%를 기록했다. 전주보다 고작 1% 포인트 오른 것이지만 ‘계묘국치’라고 비난받는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생각하면 지지율 반등 자체가 놀랍다. 물론 이번에 강제징용 배상 건에서 완승을 거둔 일본 측이 다른 갈등 사안에서도 계속 이기려 들고 한국 정부가 또 맥을 못 춘다면 윤 대통령 지지율은 급전직하할 것이다. 다만 ‘들불처럼 타오르는 반일 민심’은 지난 정권 때 너무 자주 부추기고 남용해서인지 지금은 다소 힘이 빠진 모습이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이 수출 규제를 단행하기 불과 한 달 전인 2019년 6월 도쿄에서 열린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에 참가했었다. 그때 만난 일본의 ‘지한파’ 학자들은 한목소리로 “징용공 문제는 너희가 진짜 잘못한 거야. 너희 정부가 빨리 해결해야 돼”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 측 학자들은 ‘덮어두던 문제가 터진 건데 이참에 말끔히 털어내면 되고, 이 싸움에서 우리가 질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체제는 이미 유효 기간이 다했으니 달라진 한·일 위상에 부합하는 새로운 체제를 수립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문제가 많았던 65년 청구권협정 체제를 뒤엎고, 일본이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며 사죄와 배상을 확실하게 하는 식으로 관계를 당당하게 재정립하자는 주장이었다.

징용 배상 싸움에서 완패한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허황한 얘기다. 당시 문재인정부와 코드가 맞는 학자들의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다. 기존 협정의 단물은 다 빼먹고 지금 와서 우리 기분 좋아지는 쪽으로 다시 협정을 맺자는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한국 전문가인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는 지난해 펴낸 책 ‘한국의 행동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한국은 전후 식민지에서 독립해 선진국이 된 국가들의 선두에 서 있다. 하지만 한국은 선진국으로서 책임을 지고 행동하느냐, 아니면 ‘불평불만 국가’로서 선진국에 호소해야 하는지 크게 고민하고 있다. 식민 지배의 피해자로서 옛 제국주의 세력과 같은 진영에 들어간 상황을 떳떳하게 여기지 않는다.” 불평불만 호소는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에 저지른 착취 등을 계속 문제 삼는 것이고, 선진국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은 국가 간 합의나 주권면제 원칙을 지키는 걸 뜻한다. 서로 충돌하는 두 스탠스를 동시에 취할 수는 없다.

오구라 교수는 “아베 신조 및 스가 요시히데 정권은 불평불만 국가인 한국을 잘라내려고 거절의 메시지만 보냈다”면서 이렇게 접점이 사라지면 한·일 양쪽 다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은 21세기에 한국이라는 이해자를 잃고 한반도 전체를 적으로 만들면 철저하게 몰락하리라 예측된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정권은 과연 한국이라는 이해자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할까? 회의적인 전망이 많지만, 부디 그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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