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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원응두 (14) 자본 없이 창업 가능하단 말에 덜컥 ‘복덕방’ 열어

대부분 복덕방에 대해 모르던 시절 제주에서 세 번째로 부동산업 시작

원응두 원로장로가 사업할 당시 중문교회 야외예배 때 중문해수욕장에서 부인 김춘년 권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던 중 ‘복덕방’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자본 없이 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당시 제주읍에는 제주부동산이란 곳이 있었다. 서귀읍에는 매일시장 쪽에 한 노인이 경영하는 복덕방이 한 곳 있었다. 당시 제주도민은 30만명 정도로 대부분 부동산이나 복덕방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기심이 생기면 못 참는 성격이라 나는 부동산업을 해보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해서 제주에서 세 번째로 부동산업을 하게 됐다. 그때 부동산업은 면사무소에 가서 신고하고 면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신고제였다. 허가를 받기 위해 신고를 하러 면사무소에 가보니 총무계장도 부동산업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라면서 알아보고 허가증을 내주겠다고 했다.

내가 ‘제일부동산’이라는 간판을 걸고 사무실을 개업하니 동네 사람들이 와서 ‘부동산이 무엇을 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또 ‘무엇을 파는 곳이냐’며 묻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들면서 부동산 사무실은 쉬어가는 장소가 됐다. 나는 결명차를 끓여 오는 손님들을 대접했다. 사무실은 나중엔 동네 사람들의 쉼터가 됐다.

이때가 1973년이었다. 정부의 제주개발계획 정책에 따라 중문에 국제관광단지가 조성된다는 말이 나오자 외부인들의 땅 투기가 시작됐다. 이들은 중산간 지대 땅과 임야들을 매수하기 시작하며 북새통을 이루었다. 한동안 사무실은 잘 돌아가 무척 바쁘게 일을 했다.

이렇게 부동산업을 운영하는 중에 서울에서 한 중개인이 내려와 자신은 장로의 아들이고 교회 집사라고 하면서 물건들을 서로 연결하면서 함께 동업하자고 제의했다. 중개인이 땅을 매수할 사람을 보내고 나는 땅을 매입해 등기 이전까지 해 서류를 보내면 대금을 받는 형식이었다. 처음엔 서로 믿고 일을 잘했다.

어느 날 그 중개인은 내 명의로 돼 있는 수천 평 임야가 필요하니 자기에게 이전해 주면 대금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 집사를 믿고 모든 절차를 밟아 그 땅을 이전해 주었다. 그런데 그는 금방 주겠다고 약속을 해놓고는 대금을 주지 않았다. 땅 대금을 주지 않아 독촉하니 자신의 빌딩을 팔아 갚겠다고 했다.

하지만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깜깜 무소식이었다. 결국 대금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중개인은 빌딩은 안 팔리니 자신의 별장이라도 팔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용을 알고 보니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 그는 노름으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아무것도 없이 살아가는 형편에 있었다.

그때 손해 본 금액이 5000만원이었다. 당시 돈으로는 꽤 큰 돈이었다. 결국 나는 모든 재산을 또 탕진하고 부동산도 그만두고 셋방살이를 살았다. 여러 곳으로 이사 다녔다. 부동산을 하며 자본이 잘 돌아갈 때 교회 근처에 부지를 마련하고 그곳에 제법 큰 2층집을 지어 생활했지만 그 집에서 오래 살지 못했다. 빚을 갚기 위해 집을 팔아 부채를 청산했다.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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