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원응두 (16) 처음 심은 귤나무 100주에서 20관 수확의 기쁨 맛봐

다음 해엔 100관, 해마다 두 배로 늘어 국내 유기농업 선구자 오 집사 만난 후
친환경 농업에 대해 새로운 인식 갖고 해오던 농법 버리고 유기농 재배 결심

원응두(화살표) 원로장로가 유기농법으로 친환경 재배를 하면서 정농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모습.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는 말씀이 있다. 옛 속담의 종과득과(種瓜得瓜) 종두득두(種豆得豆)라는 말과 같다.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는 뜻이다. 처음 심은 귤나무 100주에서 75㎏(20관)을 수확했다.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귤 농사로 첫 수입을 얻고 십일조를 드리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다음 해에는 376㎏(100관)을 수확했다.

해마다 두 배로 수확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던가. 이번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아침엔 해 뜨기 전 집을 나와 일하다 저녁 때는 캄캄해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일했다. 몸은 힘들었다. 그러나 마음은 편했다. 부지런히 일하면 먹고 살 수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중에 미처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집을 찾았다. 채권자들이었다. 내가 빚을 다 갚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때마다 사정사정해 매달렸다. 이자를 복리로 계산해 차용증서를 써주곤 했다. 빚을 갚으려고 틈틈이 품팔이를 했다. 하지만 그 수입으로 조금씩 갚기는 해도 이자를 갚기란 버거웠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큰아들(희종)이 교육전도사로 봉사하는 경기도 남양주 한샘교회 오재길 집사라는 분이었다. 그는 유기농업을 하라고 말했다. 오 집사는 초대 정농회 회장으로 오랫동안 그 조직을 이끌어 왔다. 어려서 일찍이 월남해 자수성가한 분이었던 오 집사는 국내 유기농업 분야에선 선구자였다. 그는 내가 제주에서 귤 농사하는 것을 알고는 유기농으로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었다.

당시는 유기농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던 때였다. 나 역시 유기농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오 집사를 만나 친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많은 것을 배웠다. 나도 친환경으로 귤을 재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계기가 돼 귤 농사를 유기농으로 하기로 하고 유기농법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관련 도서도 사고 유기농을 한다는 사람을 수소문해 직접 찾아가보기도 했다. 내가 유기농에 관심을 가진 것은 과거 종묘사를 하면서 인체에 해로운 독성 농약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양심의 가책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교회 장로라는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해롭게 하는 농약을 팔아 왔다는 생각이 마음을 괴롭혔다. 그래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기로 했다.

나는 정농회와 오 집사를 만나 ‘뿌린 대로 거둔다’는 성경의 말씀을 확실하게 배웠다. 친환경 농업에 대해 새로운 인식도 갖게 됐다. 지금까지 해오던 농법을 과감히 버렸다. 정농회 회원으로 가입도 했다. 그렇게 해서 본격적으로 친환경 운동에 참여했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새롭게 하기로 작정하니 하늘을 나는 새가 되는 기분이었다.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문서선교 후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