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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만 했을 뿐인데…현직검사도 1억 뜯겼다

디지털 성범죄 ‘몸캠피싱’
‘男 모르게’ 발가벗겨졌다

게티이미지뱅크

#대기업에 재직 중인 30대 A씨는 인스타그램 스타다. 평소 호감을 표현하는 여성들로부터 하루에 2~3건의 인스타그램 다이렉트메시지(DM)를 받는다. A씨는 지난달 자신에게 DM을 보낸 여성 중 이상형에 부합하는 사진을 프로필로 걸어둔 B씨와 연락을 시작했다. 며칠 대화가 오간 뒤 B씨는 “카카오톡으로 넘어가자”며 A씨에게 자신의 아이디를 알려줬다. A씨는 그녀가 걸어온 화상통화를 수락했고, 서로의 신체 부위를 보여주자는 제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통화 도중 영상 화질이 급격히 나빠졌고, B씨는 A씨에게 특정 파일(.apk)을 설치하면 된다고 했다. A씨가 파일을 클릭하는 순간 메시지가 도착했다. “음란행위 녹화됐습니다. 단톡방에 유포합니다.”

급증하는 몸캠피싱…‘디지털장의사’ 업체 문전성시

A씨가 당한 건 전형적인 ‘몸캠피싱’이다. 몸캠피싱은 몸캠(Body cam)과 피싱(Phishing)의 합성어로, 사이버 공간에서 남성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해 자위 등 음란행위를 유도한 뒤 이를 촬영해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식으로 돈을 갈취하는 범죄다. 3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몸캠피싱 범죄 건수는 총 4313건으로, 2018년(1406건) 대비 약 3배 수준 규모로 늘어났다.

몸캠피싱 범죄가 늘면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유출 사진을 온라인에서 삭제해주는 ‘디지털장의사’ 업체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들 업체는 피해자의 의뢰를 받아 온라인에 유포된 그들의 사진 및 동영상을 삭제해주는 일을 한다. 업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C회사는 몸캠피싱 피해자가 늘면서 최근 24시간 운영하는 상담 업무가 포화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C회사가 자체적으로 집계한 ‘내부 상담 건수’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과 2월 상담 건수는 각각 900건, 1200건에 달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1%, 214% 증가한 것이다. 몸캠피싱이 급증한 가장 큰 원인으로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관계 확대’가 꼽힌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로 비대면 사회가 일상이 되면서 몸캠피싱을 포함한 모든 온라인 범죄가 다 늘었다”고 말했다. 김현걸 한국사이버보안협회 회장은 “몸캠피싱은 1차적으로 외부보다 내부에 사람이 많고, 안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을 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중고나라 잡범 취급”… 경찰 불신
‘김민정’이라는 가짜 이름을 내건 몸캠피싱 범죄자가 피해자와 채팅을 하면서 ‘민정이요가’라는 이름으로 악성코드가 심어진 파일을 전송해 클릭하도록 유도하는 대화 화면(왼쪽). 또 다른 몸캠피싱 범죄자가 ‘음질 개선앱’ ‘화질 개선앱’ 등의 이름으로 위장한 악성코드 파일을 피해자에게 보낸 뒤 설치하라고 유도하는 대화 화면(오른쪽). 해당 파일을 설치하면 피해자의 휴대폰 전화번호 목록이 범죄자에게 넘어간다. 네이버카페 ‘몸캠피싱피해자모임’ 운영자 제공

이처럼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수사와 검거는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몸캠피싱 범죄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반면 검거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검거율은 2018년 약 20%로 집계됐지만 지난해는 10.8%까지 떨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서버가 외국에 있으면 해당 국가에 공조 수사를 요청해야 하는데 국가 간 사법 체계가 달라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면서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영상이 유포되는 것을 막는 것인데 경찰이 하는 일은 범죄자 검거에 집중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자구책을 찾아 나서고 있다. 디지털장의사 업체 문의가 빗발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피해자들 모임인 네이버카페 ‘몸캠피싱피해자모임’(몸피모)의 회원은 12만명이 넘을 정도다. 이들은 몸캠피싱에 무관심한 미디어와 피해를 신고해도 불성실한 태도로 임하는 경찰에 대한 불만이 카페를 활성화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카페 회원은 “경찰이 우리를 보는 시선은 중고나라 잡범 수준,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다른 회원들도 “경찰에 신고하면 서버가 해외에 있어 잡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고 했다.

몸피모 카페 운영자 D씨는 매일 약 10건의 피해 사례를 상담한다고 전했다. 그는 “상담했던 분 중 40대 검사도 있었다. 범죄자들은 전화번호부를 해킹하면서 저장된 이름을 보고 그 사람의 직업을 유추하는데, 이분은 사회적 명예가 중요했던 분이라 1억5000만원까지 뜯겼다”고 말했다. 이어 “몸캠피싱은 직업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범죄인데 보이스피싱과 달리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작정 하지 마라?… 근본 대책 아냐”

심각한 것은 몸캠피싱 범죄가 청소년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10대를 대상으로 한 몸캠피싱 건수는 2018년 365건에서 2022년 544건으로 훌쩍 뛰었다. 지난 2021년 5월에는 중학교에 다니던 남학생이 몸캠피싱으로 협박을 당하다 인천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돈이 없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행은 돈 대신 또 다른 피해자를 모아 오게 지시하는 방식으로 변형되고 있다. 몸피모 카페 운영자 D씨는 “돈이 없으면 중년톡, 심톡, 미프, 아자르 등 랜덤채팅 앱에서 여자인 척하면서 남성의 몸캠을 확보해 오라고 지시한다. 범죄자 대부분이 조선족이라 남성을 낚기 위한 대화를 할 때 어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각 지역 경찰청은 청소년 대상 몸캠피싱 피해가 확산하자 다양한 예방 매뉴얼을 배포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음란채팅 하지 않기’를 최우선 예방책으로 언급하는 수준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하니 아예 운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선 동양대 경찰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미디어를 어떻게 다루고 활용해야 하는지, 미디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도 “랜덤채팅 앱을 사용하는 연령대가 낮아지고 채팅앱에 대한 청소년 접근성이 높아진 만큼 사용법에 대한 교육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경연 기자, 서지윤 인턴기자 contes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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