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은 왜 칩스법에 ‘어린이집 의무화’ 넣었을까

‘인력난’ 미·영 “여성을 일터로”


영국 남부 브라이턴에 사는 33세 미혼모 케이트는 육아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2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영국의 민간 베이비시터의 평균 시급은 15파운드(약 2만4000원).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케이트로선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다. “정부 지원이 있었다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을 텐데….” 케이트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직장을 계속 다니며 경력을 쌓고 싶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며 “지금은 아이가 학교에 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영 인력난 이유 추적했더니 ‘보육’

최근 극심한 인력난을 겪는 미국과 영국에서 보육정책을 되돌아보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일할 사람이 왜 부족한지를 조사했더니 부실한 보육정책 탓에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매달리는 젊은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미 노동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미국 일자리 수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2월 이후 지난해 말까지 약 2% 증가했다. 하지만 핵심 경제활동 연령층인 25~54세 노동자 중 38만명은 팬데믹 이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아직 복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육아를 위해 가정에 머무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1월 53년 만에 최저인 3.4%를 기록했는데, WSJ는 역대 최저 실업률의 주요 원인을 보육 환경의 열악함에서 찾을 수 있다며 여러 근거를 제시했다. 육아 때문에 구직 의사를 보이지 않는 사람이 늘면서 실업률이 더 낮아졌다는 것이다. 미 인구조사국의 지난 2월 설문에서 490만명이 보육기관을 다니지 않는 자녀를 돌보기 위해 결근했다고 답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같은 달 발표한 경기동향 보고서 베이지북에서 부족한 보육 서비스가 노동 참여를 가로막는다고 평가했다.

영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가정조차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령기 아동을 위한 종합적인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기엔 비용 부담이 크다고 가디언은 지적한다.

이는 노동자의 노동시장 이탈로 직결된다. 영국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영국에서는 노동가능연령 중 170만명이 가족을 돌보기 위해 유급 근로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영국 기업 4분의 3은 지난해 전국적으로 100만개 이상의 공석이 발생하면서 조직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변화하는 정부, 보육정책에 박차

미국과 영국은 모두 복지에서 국민의 자조 노력과 자기 책임을 강조해온 전통적인 ‘작은 정부’로 대표된다. 보수 성향이 강했던 이들 나라의 아동·가족 정책은 최근 결정적인 기류 변화를 맞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4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회의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난해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따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신청 절차를 지난 2월 말 공개했다. 정부 보조금을 받으려면 ‘품질 높은 보육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조건이 명시됐다. 기업이 직장 내 어린이집을 설치하거나 지역 보육시설의 개조 등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건이 공개되자 반도체 공급망 회복을 촉진하도록 한 법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바이든 대통령은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미국 제조업이 부흥하려면 여성 근로자들의 현장 복귀가 전제돼야 한다는 논리로 방어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4 회계연도 예산안’에도 육아지원을 위한 정책적 제안이 담겼다. 지난해 종료된 자녀 1명당 최고 3600달러(약 475만원)의 세금 공제를 되살리는 안이 대표적이다.

영국도 지난 15일 발표한 예산안에 보육비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젊은 부모들이 일터에 나오도록 무상보육을 확대해 2025년 9월부터는 일하는 부모의 1∼2세 영유아 자녀에게 주30시간을 제공한다. 가디언은 “영국은 보육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다. 보육비를 지원하라는 압력이 점차 가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육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예산, 즉 돈이다. 미 경제매체 CNBC는 컬럼비아대 빈곤·사회정책센터 자료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아동 세금공제 확대가 원안대로 진행되더라도 10년 동안 429억 달러(약 48조원)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예산 처리 권한을 가진 하원의 다수당인 공화당은 증세안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영국 정계에서도 가뜩이나 취약한 재정건전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잖다.

사회 분위기도 보육 친화적 환경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WSJ는 사내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용주가 6% 미만에 불과하다는 올해 초 설문조사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보육시설 설치 책임에 직면한 기업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모 등이 소속된 미 최대 돌봄 근로자단체인 전국가사노동자연맹 전무이사 젠 스토는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야 한다. 육아 돌봄이 상품이 아닌 권리여야 한다는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기 위해선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