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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살려내는 출판의 힘… 진짜 ‘삼대’ 펴내다

[책과 길] 삼대
염상섭 지음
지식을만드는지식, 1366쪽, 4만6000원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이 새로 출간한 염상섭 소설 ‘삼대’의 본문 속에는 192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소설의 내용을 현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수의 이미지 자료를 수록했다. 왼쪽은 당시 경성의 일본인 경제 중심지였던 ‘선은 광장’에 대한 설명과 사진이다. 오른쪽은 1931년 조선일보 연재 당시 신문에 실린 안석주 화백의 삽화. 지만지 제공

염상섭(1897-1963)의 장편소설 ‘삼대’를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입 시험에 출제될 정도로 유명한 소설,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작, 문학평론가들이 꼽은 ‘최고의 근대소설’이지만 90여년 전에 쓰여진 이 두툼한 소설을 읽기란 쉽지 않다. 서양의 오래된 고전들은 여전히 읽히고 있는데 한국문학의 고전이 될만한 작품은 그렇게 잊혀지고 있다.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은 ‘삼대’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서는 현재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게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출간된 지만지의 ‘삼대’가 바로 그 결과물로 고전을 살려내는 한 모범을 보여준다.


‘삼대’는 1931년 1월 1일부터 9월 17일까지 9개월 동안 215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됐다. 조씨 가문 3대의 이야기를 뼈대로 삼아 개화기에서 1920년대 말에 이르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형상화했다. 여기에 젊은 세대의 이념과 운동이라는 이야기를 배치해 시대의 고민을 담아낸다.

출판사는 ‘삼대’와 현대 독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시공간의 갭을 ‘곁텍스트’로 메꾸기로 했다. 곁텍스트는 주텍스트(본문)를 보완하는 ‘파라텍스트(para-texte)’의 우리말 작명이다. 곁텍스트는 근대문학 연구자인 김희경 박사가 쓴 831개의 주석과 150쪽 분량의 해설, 김종욱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작품 해설, 전승주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의 판본 해설, 소설의 배경이 된 1920년대 경성과 관련한 이미지 자료 등으로 구성했다.

‘삼대’는 1920년대 경성과 경기도 일원에서 사용되었던 서울말을 가장 풍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금은 없어진 옛말, 한자어, 사투리 등이 그득하다. 김희경 박사는 이 모든 것에 주석을 달았다. 소설 속 인명과 지명도 일일이 설명했다.

출판사는 곁텍스트를 만들기 전에 ‘삼대’의 정본을 확정해야 했다. 염상섭은 신문 연재가 끝나자마자 검열 당국에 출판 허가를 신청하지만 거절당한다. 해방 후에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화되면서 원전 그대로의 단행본 출간이 더욱 어려웠다. 그는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내용을 대폭 수정해 단행본을 출간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비판적 내용은 순화되고 가족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이 개작이 염상섭 본인에 의해 이뤄지긴 했지만 이를 원본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게 학계의 평가다.

전승주 교수는 이번에 신문 연재본을 원전으로 삼아 정본을 확정했다. 신문 연재본을 기본으로 한 책 3종과 개작된 단행본을 기본으로 한 책 3종을 비교해 총 5000군데의 차이를 찾아냈다. 전 교수는 이 차이를 확인하고 오류와 오기를 바로잡아 신뢰할만한 정본을 완성했다.

출판사는 여기에 이미지 자료를 대거 추가했다. 신문 연재에 사용됐던 안석주 화백의 삽화 171컷을 모두 수록했다. 삽화는 당시 신문의 낮은 해상도와 세월의 흔적 탓에 거칠지만 뛰어난 회화성을 보여준다. 또 당시의 풍경, 인물, 복식, 음식, 사물 등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현대 독자를 ‘삼대’의 시공간으로 데려다주는 역할을 한다. 지만지 ‘삼대’의 표지화를 그린 류장복 화백은 “안석주의 삽화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면서 “모든 것이 영화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소설에 나오는 당시의 담배, 고무신, 축음기, 광고 포스터, 건물 등을 보여주는 이미지 66개를 찾아내 수록하고 설명을 붙였다. 출판사는 ‘삼대’의 이미지 자료 수집을 위해 ‘이미지편집자’라는 자리를 만들어 편집자를 배치했다. 이 편집자는 소설 속에 언급된 ‘백동 권총’ ‘육혈포’가 실제 어떤 권총이었는지 이미지로 보여주기 위해 무기 전문가의 자문까지 받으며 당시 권총 모델을 찾아냈다. 소설 속 공간을 확인할 수 있는 1920년대 경성 부분 지도도 16개를 제작해 수록했다.

2018년 8월 시작된 ‘삼대’ 복간 작업에는 4년 반의 시간이 투입됐다. 책의 맨 뒤에 있는 ‘책을 만든 사람들’에는 32개 분야 50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렇게 해서 1366쪽에 4만6000원이나 하는 ‘삼대’가 만들어졌다. 2004년 출간된 ‘삼대’가 711쪽에 1만2000원인 것과 비교해보면 지만지 ‘삼대’의 곁텍스트가 얼마나 방대한지 가늠할 수 있다.

고전과 현대 독자 사이에는 넓고 깊은 골이 있다. 고전을 어려워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골을 작가·작품 해설 정도로는 메우기 어렵다. 고전과 독자를 이어주는 보다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출판의 개입이 필요하다. 지만지의 ‘삼대’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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