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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정명석 변호한 초대형 로펌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요즘 로펌들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가 새로운 수익 창출원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국내외에서 ESG가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고, 기업 이미지나 투자 유치에도 큰 영향을 주는 만큼 ESG 친화적 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해 로펌의 컨설팅을 받으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어서다. ESG는 기업 활동을 함에 있어 기왕이면 더 좋은 사회,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하자는 취지에서 주목받게 됐다. 당장의 이익에 매몰되지 말고 사회에 유익한 방향으로 기업 활동을 하면 종국에는 더 큰 대가로 돌아올 것이란 믿음이 깔려 있다. 또 설사 좀 손해를 보더라도 사회와 미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옳은 일을 하겠다는 철학도 깔려 있다.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은 물론이고, 요즘은 중소기업들까지 ESG를 신경쓰면서 경영에 임하는 추세다.

숱한 여성 신도들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사태를 보면서 로펌이나 법조계도 ESG와 같은 철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명석은 얼마 전까지 법무법인 ‘광장’을 비롯해 변호인 14명한테 조력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기상천외한 비행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후 광장 등의 일부 변호사가 재판부에 변호인 사임계를 냈다.

정명석이라고 변호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사건 수임이 쉽지 않은 개인 변호사들이나 JMS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변호사가 아니라 국내 매출 2위 초대형 로펌의 변호사 여럿이 정명석의 변론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는 솔직히 많이 놀랐다. 정명석의 변태적인 성폭행 행각에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피해자들이 그런 막강한 변호인단을 둔 정명석과 싸우기가 얼마나 힘에 부쳤을지 짐작이 간다.

정명석의 반인권적인 행태를 고발해온 김도형 단국대 교수도 그런 점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는 JTBC에 나와 재판 대응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특히 대한민국 최대 로펌 중 하나인 광장이 강력하게 (정명석의) 무죄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로 정명석의 실체를 폭로한 조성현 PD도 “사이비 종교를 취재하며 절실히 느낀 것 중 하나가 법은 절대 피해자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이었으면 종신형이었을 정명석한테 10년형을 선고해 추가 피해자들이 나오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명석을 광장이 꼭 변호해야 했을지 저는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광장이 왜 이 사건을 수임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단순히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지 아니한다’는 변호사 윤리규약 16조를 순순히 따랐기 때문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와서 돌연 사임한 건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광장 측은 아직 수임과 사임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정명석에 대한 변론 못지않게 그의 ‘황제 접견’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명석은 지난해 재구속된 뒤 최근까지 하루 평균 변호인 접견 횟수가 1.7회에 이른다. 재벌 회장들이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도 횟수가 많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변호인 접견을 개인 여가 시간으로 악용하는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명석 사태를 둘러싼 법조계 풍경에 국민의 시선이 결코 곱지 않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변호사들이나 로펌, 변호사 단체 등이 사건 수임이나 변호사 접견 등에 있어 그동안의 관행에 문제가 없었는지, 새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게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수임 거부에 대한 윤리규약도 곧이곧대로만 적용할 게 아니라 최소한의 예외조항이 있어야 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윤리규약보다 상위 개념일 수 있는 변호사법 제1조(변호사의 사명)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권력과 돈으로 구축된 막강한 변론이 혹시라도 기본적 인권, 특히 변론 수단이 약한 피해자의 인권을 결과적으로 침해하는 상황이 된다면 과연 그 변론은 변호사법 1조가 말하는 ‘기본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합당한 것일까. 이 질문은 특히 ‘힘 있는 사람들’을 변론해온 대형 로펌들부터 자문해봐야 할 사안이다. ‘법이 절대 피해자 편이 아니었다’는 지적, 이건 비단 조 PD만이 아니라 국민 다수가 그렇다고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법조인들이 흘려듣지 말아야 할 테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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