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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피는 수면에 분홍 벚꽃·초록 나무… ‘몽환적 수채화’

전남 화순의 잔잔한 저수지에 안긴 신비로운 풍경

이른 아침 전남 화순군 화순읍 세량지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연분홍 산벚나무꽃과 멀리 삼나무 등이 물안개 피어나는 수면에 반영을 드리우며 신비롭고 몽환적인 풍경을 펼쳐놓고 있다. 미국 뉴스 채널 CNN이 2012년 한국에서 가 봐야 할 50곳에 선정한 뒤 전국에서 사진가가 몰려든다.

저수지는 흐르는 물을 저장해 물이 필요할 때 사용하게 하는 인공 수리시설이다. 과거 수력발전·상수도·공업용수·농업용수 등으로 사용되던 저수지는 독특한 풍광과 둘레길 등 관광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물이 넉넉해 자연스럽게 주변에는 나무와 풀이 우거지고, 바람이 없는 날에는 잔잔한 수면이 거울처럼 하늘을 담아내 서정적인 풍경을 펼쳐놓는다. 찾는 이들이 늘면서 입소문 난 저수지가 여럿 있다.

전남 화순에는 저수지 158개가 있다. 이 가운데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봄철에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화순읍 세량리의 세량지(細良池)다. 둑을 의미하는 세량제(細良堤)로도 불린다. 2012년 미국 뉴스 채널 CNN이 한국에서 가 봐야 할 50곳에 선정한 아름다운 곳이다.

세량리는 1395년 남양 홍씨가 최초 입향하면서 샘이 있는 마을 ‘새암골’로 불리던 곳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양동이 됐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세량리로 바뀌었다.

세량제는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1969년 준공됐다. 흙을 쌓아 올린 둑은 길이 50m에 높이 10m 남짓. 호수 호(湖) 자를 붙일 만큼 드넓은 저수지와 비교하면 큰 규모는 아니다. 유효 저수량 5만4000t이고, 이 물을 받아 농사짓는 땅이 3만3000㎡에 이른다.

이 저수지가 먼 나라까지 이름을 알린 계기는 산벚나무꽃이 흐드러진 봄날 아침에 촬영한 사진 몇 장이다. 아침 햇빛에 반짝이는 연둣빛 잎사귀와 연분홍 꽃잎, 호숫가에 청동검처럼 뾰족하게 서 있는 한 그루 삼나무와 그 오른편 뒤로 호위무사처럼 군집하고 있는 수십 그루의 삼나무가 한 폭의 수채화를 펼쳐놓는다. 이 풍경이 잔잔한 수면을 화폭 삼아 데칼코마니를 그려놓으면 북유럽의 어느 호숫가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답다. 여기에 아침 일찍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선계(仙界)가 펼쳐진다.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해마다 봄이면 아침 일찍부터 전국에서 사진가가 몰려든다.

세량지는 봄이 지나도 매력을 맘껏 뿜어낸다. 오히려 꽃이 지고 사진가의 발길이 뜸해지는 초여름이면 평화로운 물가를 호젓하게 즐기기에 좋다. 저수지 왼쪽에 자리한 전망대에서 세량지를 물들인 짙푸른 녹음을 감상하고 세량지 주변에 약 800m 길이로 조성된 둘레길을 걸으면 초록빛이 눈을 맑게 해준다.

화순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또 다른 저수지는 동면 서성리의 서성제(瑞城堤)다. 화순군의 젖줄인 화순천 지류 중 하나인 동천에 1965년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제방을 쌓으면서 생겼다. 호수의 남서쪽을 제외한 모든 방향에 여러 봉우리와 절벽이 형성돼 있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순군 동면 서성제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환산정.

이곳 풍광의 방점은 환산정(環山亭)이다. 조선 인조 때 백천 류함이 지은 정자다. 백천은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이끌고 청주까지 올라갔으나 왕이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화순으로 돌아와 은거했다.

깊은 산 계곡 옆 벼랑 위에 방 한 칸의 아담한 초가 정자 한 채 짓고 뜰에 소나무 심고 국화 가꾸며 환산정이라 현판을 걸었다. 당시에는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 곁 벼랑 위였다. 봄엔 마주한 절벽에 산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엔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들락거렸을 장소다.

저수지가 들어서면서 벼랑은 잠기고, 호젓한 호숫가 물 위에 뜬 듯한 모습이 됐다. 계곡 가 절벽은 섬이 됐고, 정자는 물로 둘러싸인 ‘환수정(環水亭)’이 됐다. 단칸 초가였던 정자는 호수의 습기로 인해 구조목이 부식됐다. 화순군과 문화 류씨 화순종친회가 나서서 2010년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중건했다.

환산정 앞 노송이 정자를 지키는 근위병처럼 든든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자랑한다. 호숫가 버드나무 군락에는 연두가 주렁주렁 달렸다. 알프스 호숫가 닮은 호젓한 경치, 화순적벽 못지않은 서암적벽이 눈을 정화한다.

물염적벽 주변 빼어난 경치를 조망하는 물염정.

적벽으로 따지면 화순적벽을 빼놓을 수 없다. 동복천 상류인 이서면 창랑리·보산리·장항리 일대 7㎞에 걸쳐 있는 붉은 절벽이다.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을 통칭한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발목을 붙잡았다는 물염적벽은 건너편 언덕 위에 있는 정자 물염정과 산수화처럼 어우러진다.

여행메모
이달 하순 고인돌축제와 화순적벽축제
흑두부·흑염소… 건강 먹거리·온천욕

수도권에서 자가운전으로 세량지에 간다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광주광역시를 거치는 여정이 빠르고 편하다. 세량지 입구에 무료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주차장에서 세량지까지는 약 800m 거리다. 서성제는 화순읍에서 동북쪽으로 6㎞ 떨어져 있다. 국도변 용생리에서 2㎞ 북쪽으로 가면 만난다.

화순 고인돌 유적지에 자리한 핑매바위. 길이 700㎝, 높이 400㎝, 무게 200t으로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화순은 고인돌의 고장이다. 오는 21일부터 30일까지 ‘봄꽃과 함께하는 5000년 시간여행’을 주제로 ‘고인돌 축제’가 열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곡면 효산리·춘양면·대신리 일대 고인돌 유적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남방식 고인돌로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무게 200t의 ‘핑매바위’ 주변에는 예술성이 깃든 갖가지 조형물이 전시된다.

29일부터 30일까지 이서커뮤니티센터와 적벽 망향정에서는 화순적벽문화축제가 열린다. ‘적벽걷기대회’도 가볼 만하다.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언제든 자유롭게 방문이 가능하지만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을 보려면 정해진 시간에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화순에는 오리, 콩 및 흑두부, 흑염소, 다슬기 등 건강한 먹을거리가 다양하다. 온천욕도 빼놓을 수 없다.



화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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