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봉호 (17) 유학 10년간 박사학위·아내·아들 얻어… 모두 주님 ‘은혜’

돈 걱정 하나 없이 마음껏 공부하고
평생 동안 교제하게 될 친구 사귀고
늘 아껴주신 반 퍼슨 교수 가르침은
일생에 가장 중요하고 행복했던 시간

손봉호(단상 위) 교수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박사학위 공개 논문심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유대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내 일생에 가장 중요했고 행복했다.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으며, 평생 동안 가까이 교제하게 될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다. 같이 박사과정을 시작한 헬쯔마, 흐리피운, 슈클만은 확실한 개혁주의 신앙인으로 모두 훌륭한 박사학위 논문을 썼고 대학교수가 되었다. 슈클만은 상당 기간 그 나라 국회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들과 사귀면서 서양인의 사고방식, 행동방식, 가치관 등을 잘 알 수 있었으며 신앙인의 순수한 경건이 어떤 것인가를 가까이서 보고 배웠다.

그들 못지않게 나를 아껴주신 분은 역시 반 퍼슨 교수였다. 그는 나를 그의 학술동역자(조교)로 만들어 논문 준비에 대부분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아울러 논문 지도교수로 내가 논문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못하도록 제어해 주셨다. 유학 생활이 10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 나라 친구들처럼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면서 만족스러운 논문을 쓸 수가 없었다.

논문을 거의 끝낼 때쯤 우연히 만난 논문 부심 반델후번 교수가 “너 혹시 쓰고 있는 논문을 불에 태워버리고 싶지 않니” 하고 물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내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아십니까”하고 물었다. “걱정하지 마. 나도 그랬어”라고 했다. 그의 학위논문은 최우수 성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도 그렇게 느꼈다 하니 좀 위로가 되어 과감하게 논문을 제출했다.

예비심사에 합격한 사람은 한 시간 동안 총장과 대학위원들(Senate)이 참석한 가운데 심사위원 이외의 교수들 질문에 대답해서 그 위원회의 판정을 받아야 한다. 총장이 합격을 공포한 뒤 한국 대사를 비롯한 교민들과 친구들이 가득 모인 자리에서 반 퍼슨 지도교수는 “손 박사님, 축하합니다”로 시작되는 축사를 한국어로 해서 모두가 놀랐다. 네덜란드어로 쓴 축사를 어떤 한국인에게 부탁해서 한국어로 번역하고 그 발음을 화란 글자로 표시하도록 부탁해서 밤새 연습하고 읽으신 것이다. 그분의 추천으로 네덜란드 학술원의 보조를 받아 논문은 학술서적으로 출판되었고 독어와 프랑스어 철학학술지의 서평도 받고 전 세계 대학도서관에 비치될 수도 있었다.

친구들과 지인들을 초청해서 식사 대접을 하는 자리에서 나는 “지금 나에게는 딱 한 가지 말만 생각납니다. ‘은혜’란 말입니다” 했다. 100달러를 들고서 한국을 떠나왔는데 10년 뒤 박사학위, 아내, 아들을 얻었으니 은혜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학위를 받자마자 나는 귀국을 서둘렀다. 그대로 머물면 학술동역자로 계속 일할 수 있었고 한국 교수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 대사를 비롯해서 교민들 모두가 귀국을 만류했다. 다만 대사관의 신효헌 서기관만 “귀국하셔야지요” 했다. 그는 후에 호주 대사를 역임한 훌륭한 외교관으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역시 신앙인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마침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네덜란드어과에 교수가 필요하다 해서 취임하고 네덜란드어와 철학 부전공 강의를 하게 되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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