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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만으론 살 수 없다” 열악한 일자리 내몰리는 6070

[인구가 미래다!] <4부> 너무 빨리온 고령사회
③ 생계형 노인노동의 현실


“불안정한 노인 노동환경과 처우를 노조로 개선하겠다”며 2021년 4월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준비위원회 발족을 선언했던 노년아르바이트노조(노년알바노조)는 2년여가 흐른 현재 아직도 정식 노조 출범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 60세 이상 고령 취업자가 585만8000여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0%를 넘겼지만, 이 노조에 가입 의사를 밝힌 고령층은 20여명에 머문다. 허영구(67) 노년알바노조 준비위원장은 “모였던 이들이 하나둘 빠져 나갔다”고 말했다. 허 위원장은 더 많은 인원을 모으기 위해 그간 65세 이상이던 가입 기준을 61세로 낮추기로 했다.

괜히 책잡힐 일 만들면

노년알바노조가 2년간 준비위 꼬리표를 떼지 못한 이유에는 이 나라 고령 노동자의 현실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생계를 위해 계속 일해야 하지만 해고가 쉬운 고용불안 속에서, 고령 노동자들에게 ‘권리 찾기’란 부차적인 문제다. 허 위원장에 따르면 떠나는 이들은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외부 노조 가입 사실이 알려지면 재계약이 안 될 것”이라며 불안해 했다. 한때 노조에 관심을 보이던 이들도 “괜히 책잡힐 일 만들면 일자리를 빼앗긴다”며 끝내 거절했다. 애초 건강 문제로 일자리 유지가 어려운 이들도 많았다.

사회 전체가 고령화한 한국의 노동시장에는 50대 60대 ‘젊은 노인’들이 끊임없이 유입된다. 생애를 바친 직장에서 퇴직한 뒤 생계를 위해 재취업하는 노인들의 일자리는 제한적이다. 여성 노인은 청소와 가사 돌봄, 남성 노인은 경비 정도로 그 직종이 수렴한다. 이 일자리들은 단기계약이 맺어지는 반숙련 일자리들이고, 모여 일한다기보다는 각자 흩어져 일하는 형태다. 각자의 현장에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노인들이 애초 차별과 수모를 감내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적잖은 고령 노동자의 임금 현실은 ‘명목상 최저임금, 실질적으론 최저임금 미만’이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30년째 청소 노동을 하는 이모(75)씨는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토요일도 격주로 일하는데, 이씨가 손에 쥐는 돈은 월 172만원이다. 이는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올해 최저임금의 환산 월급(월 209시간 기준 201만580원)보다 적다. 이씨는 “점심시간이 2시간으로 돼 있다. 이런 빌딩들은 거의 다 그렇다”고 설명했다.

허 위원장은 “(노인 단기 고용계약은) 대부분 월 급여를 먼저 정한 뒤 근무시간과 일수를 맞추는 식”이라며 “명목상 식사·수면시간을 늘려 최저임금 기준을 맞추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령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최저임금 사각지대에 처했다는 지적은 계속돼 왔다. 서울시 전일제 재취업 고령자 가운데 22.8%(약 4만9000명)가 최저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학계의 최근 연구 결과다. 이씨는 “노후 준비가 안 돼 있어 그만두지도 못한다. 보험료라도 내기 위해서 일한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빌딩 전체를 청소하는 동료는 5명이다. 이씨와 이들의 평균 나이는 66세다.

기초연금에 공공근로 더해도 월 60만원


치솟은 물가 속에서 사회안전망에 기댈 수 없는 노인들은 열악한 조건을 마다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일을 하고 있는 60세 이상 인구의 비중은 지난 3월 현재 45.3%다. 70세 이상 인구로 따져 봐도 29.9%가 노동자다. 노조를 만들려는 허 위원장 본인도 1주일에 2~3일 문서정리를 돕는 사무보조 일자리를 구해 월 100만원가량을 벌고 있다. 허 위원장은 “노인들끼리는 ‘독거노인도 한 달에 100만원은 든다’고 말한다”며 “기초연금, 국민연금만 갖고는 살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해 기초연금만 받는 노인의 경우 생계형 일자리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월 60만원을 손에 쥐기 어렵다. 올해 기초연금의 월 최대 수령액은 32만3180원이다. 공공형 노인일자리는 월 30시간을 일하면 27만원을 준다. 둘을 합쳐도 60만원이 채 되지 않는데, 이는 노후 대비는 물론 기본적 생활을 유지하기에도 충분치 못한 액수다. 허 위원장은 “이러니 일을 못하면 나중에 폐지라도 주우러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현재 한국 노인 빈곤율(중위소득의 50% 미만을 버는 인구 비중)은 40.4%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 1위 자리를 수년째 지키고 있다.

저임금·저숙련 일자리도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임미령(66) 노후희망유니온 부위원장은 “(노인들은) 당장 이력서도 내기 어렵다. 채용 조건이 ‘연령 제한 없음’이더라도 전화로 문의하면 나이부터 묻는다”고 말했다. 결국 청소와 경비 노동으로 유입되지만, 그마저도 노인들 틈에 경쟁이 치열하다. 임 부위원장은 “현장에서 ‘나는 이렇게 절실하게 일하고 싶은데 왜 일자리가 없느냐’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며 “그런 일자리마저도 65세 이상은 갈 자리가 거의 없다”고 했다.

65세 이상 노동인구가 많아지며 실업급여 차별 문제도 대두된다. 현행 고용보험법은 65세 이후 신규 취업한 사람을 실업급여 적용에서 제외하는데, 이를 두고 단기계약직 노인들은 “나이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고 토로한다. 17년차 가사노동자인 황모(70)씨는 “60~64세가 하는 일이 내가 하는 일과 똑같은데, 그들은 실업급여를 받고 나는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며 “나이 먹은 게 죄”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론 노인이 쉬는 사회

고령 노동자 현실 개선을 위해서는 초단기계약 관행부터 사라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최소한 1년 계약은 돼야 한다”며 “일자리가 안정돼야 일터에서 부당 대우를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령자가 취업을 할 때 일자리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가 이뤄지는 것도 중요하다. 박정우 서울노동권익센터 연구위원은 “민간근로 영역도 정부 차원에서 일자리 알선뿐 아니라 노동권 침해 등의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창구도 현재보다 다변화될 필요가 있다. 이 소장은 “노인들의 처지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이나 단체가 필요하다”며 “당사자들 스스로가 목소리를 한데 모을 수 있어야 사회안전망 강화, 법 제도 개선이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본질적으로 고령 노동이 불가피한 현실 자체가 문제라는 말도 나온다. 빈곤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비빈곤 노인보다 높은 데서 알 수 있듯, 노인이 일하는 이유는 자아실현보다는 생계유지다. 30~40년 일한 직장에서 은퇴한 뒤 곧바로 재취업해야 하는 나라, 70세 이상 노인 3명 중 1명이 여전히 생활 전선에 있어야 하는 나라를 마냥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전문가는 없다.

박 연구위원은 “공공근로는 기초연금의 대용품이다. 애초에 65세가 넘어서도 계속 일을 해야만 하는 게 정상적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 위원장은 “노인 일자리를 강조하는 건 결국 복지 시스템이 안 돼 있다는 방증”이라며 “노인들 스스로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영 이택현 김지훈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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