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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석운 칼럼] 반도체 전쟁과 한국의 생존 전략


미·중 패권 경쟁의 핵심
반도체 전쟁 10년 갈 수도

최악엔 글로벌 생태계 쪼개져
서로 호환 안되는 시장 우려

중국 견제에 진심인 미국은
국립반도체기술센터 설립 등
기술 주도권 회복 나서

반도체 굴기로 맞선 중국은
독자 개발과 국산화 잰걸음

한국은 대체불가 기술 확보로
슈퍼乙 전략 구사해야

코로나바이러스 입자보다 작은 반도체가 국제 질서를 흔들어 놓는 전략 무기로 떠올랐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핵심은 반도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첨단 반도체의 글로벌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 미국이 주도하고 첨단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독자적인 기술 개발과 국산화를 서두르고 있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이 10년 이상 지속된다면 기술과 표준이 달라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호환되지 않는 두 개의 생태계로 쪼개질 수도 있다. 중국이 갈라파고스섬처럼 글로벌 공급망에서 분리되는 디커플링이 단기간에 급속도로 진행된다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공급 초과와 시장 축소가 맞물려 극심한 혼란을 겪을 것이다. 미·중이 상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화와 타협에 나설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최근 양측의 분위기는 갈수록 심상치 않다.

지난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폐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공동성명에서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비난했다.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 반도체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 침공할 경우 군사력을 동원해 대만을 방어할 것이라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거듭된 발언이나 중국의 무력 침공 시 오히려 미국이 대만의 반도체공장을 폭격할 수 있다는 세스 몰튼 미 하원의원의 주장은 같은 맥락이다. 대만의 반도체 공장과 기술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미국이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1948년 미국 벨 연구소에서 탄생한 반도체의 설계 등 원천기술은 미국이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후 75년간 분업화가 진행되면서 공정기술은 한국과 대만이 주도하고 있다. 반도체 회로 선폭을 3나노m(1나노:10억분의 1)로 줄이는 양산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밖에 없다. 코로나바이러스(60~140나노m)보다 작다.

미국은 앞으로 반도체 공장을 자국 내에 짓고 제조 기술의 주도권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7월 제정된 반도체과학법은 첨단기술 개발과 인프라 구축, 인력 양성 등을 위해 2027년까지 2000억 달러(약 262조원)를 투입하도록 했다. 미 상무부는 국립반도체기술센터(NSTC)를 설립해 반도체 신소재뿐 아니라 신경망 컴퓨터, 양자 컴퓨터 등 미래 기술까지 연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향후 10년 동안 반도체 관련 분야 공대 졸업생을 3배로 늘리고, 10만명의 신규 기술자를 양성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미국은 반도체 산업의 부흥과 첨단기술 개발을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2025년까지 공공기관의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국산으로 바꾸도록 했다. 지난 3월 미 상무부가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중국 투자 억제를 내걸자 자국의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무제한 자금 지원을 선언했다. 현재 16% 수준인 반도체 국산화율도 2025년까지 7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으로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하나둘 등을 돌리면서 중국의 자력갱생은 쉽지 않아 보인다. TSMC는 중국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중단했고, 네덜란드의 ASML은 반도체 공정의 핵심 장비인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공급을 끊었다. EUV 노광장비 생산을 독점하는 ASML의 지원 없이는 첨단제품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화웨이는 14나노급 반도체 설계 장비를 독자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 3월 발표했다.

한국이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초격차를 뛰어넘는 대체불가 기술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ASML처럼 독보적인 기술을 가져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슈퍼을(乙)’이 돼야 한다. 정부는 그런 슈퍼을들이 태동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미국, 중국, 대만, 일본, 네덜란드 등에서 보듯이 반도체 산업은 국가 주도 전쟁터다.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일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기초과학 투자를 강화하고 반도체 인력과 전문가를 더 많이 양성해야 한다. 기술과 인재가 유출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해야 하고, 국익을 지키기 위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반도체는 한국의 생존 수단이자 미래 전략이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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