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봉호 (29) 돈과 권력의 유혹 있었지만 하나님 은혜로 고비 잘 넘겨

명예나 돈이 아닌 공적 임무 수행하며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

손봉호(앞줄 오른쪽) 교수가 2004년 동덕여대 총장 재임 시절 산타클로스 모자를 착용하고 학생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1980년대 후반부터 시민운동에 많이 관계하게 되자 신문 칼럼, 방송 출연 등으로 언론에 많이 알려졌다. 26년간 KBS 객원 해설위원으로 뉴스 해설을 했으며 한때는 KBS에 ‘손 교수의 인간 가족’이란 프로그램까지 생겨났다. 지인들은 혹시 내가 정치계나 공직에 뜻을 둔 게 아닌가 의심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청와대에서 국회의원 공천을 약속했고 총리직 의향을 타진한 적이 있으며 새마을 회장직을 제의한 적이 있다. 신문에도 여러 번 고위직 후보로 이름이 올랐다.

나도 한국 남자라 왜 명예욕, 권력욕이 없었겠는가. 유혹에 거의 넘어갈 뻔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로 그 고비를 잘 넘겼다. 가족도 모두 강하게 반대했지만, 그보다도 나의 능력과 한계를 내가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앉으면 나도, 그 자리도 망합니다”하고 사양했다. 돈과 권력이 생기는 곳에는 서지 않기로 했다.

그 원칙을 딱 한 번 어긴 것이 2004년에 동덕여대 총장이 된 것이었다. 큰 실수였고 일생에서 가장 큰 흠이었다. 그전에도 대학 세 군데에서 총장 제안이 있었고 그 뒤에도 두 대학이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동덕여대의 요청도 사양은 했지만 끝까지 버티지 못했다. 마키아벨리의 세상 지혜를 너무 무시했고 어떤 교수가 지적한 ‘편협한 도덕주의’에 충실한 것이 화근이었다. 돈과 권한이 생기는 곳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양심’도 지킬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계기였다.

교수직을 유지하면서 돈이나 권력이 생기지 않는 공적 임무는 많이 수행했다. 초대 정부 공직자 윤리위원을 맡아 차관들과 입씨름을 해가며 공직자재산신고 항목에 주식을 포함시킨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지금도 뿌듯한 일이다. 어쨌든 그 위원을 맡았다고 해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12년간 대검 감찰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장, 세종문화관 이사장도 해 봤다. 지금도 6년째 국방부 중앙전공상심사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한때는 시민단체, 복지기관, 기독교 단체들의 이사장 자리를 20개나 가졌고, 지금도 명예 이사장 자리가 4개나 된다. 선의를 가지고 공익을 위해 활동하려는 젊은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내 이름을 좀 이용하자고 요청하는 것을 거절하지 못해 수락하다가 그렇게 많아진 것이다. 수당이나 회의비는커녕 모두 회비를 내야 해서 한때는 그렇게 바친 돈이 한 달에 100만 원이 훨씬 넘었다. 그리고 지금도 부담이 될 정도로 내고 있다.

그러나 명예나 돈이 아니라 공익, 특히 약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므로 후회하지 않는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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