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김상연의 K컬처]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빈부격차는 정말 심각할까?

김치, 강남스타일, BTS, 영화 기생충 등 일과성 이벤트들에 머물렀던 세계의 관심이 이제 한국문화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K컬처로 대변되는 국내외의 다양한 사회현상들, 그리고 그들의 명과 암을 사회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반추해 봄으로써 한국문화의 본성을 재조명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몇 해 전 한국사회의 갈등해소를 목적으로 공동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첫 미팅에서 우리는 바로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잠시 공허한 토론이 이어진다. 내가 묻는다. “한국 사회에 갈등은 실재하는 건가요?” 그렇지. 일단 갈등이 있는지부터 확인해봐야지. 며칠 후 서베이가 이뤄졌고, 우리는 데이터를 통해 갈등의 실존 여부에 대한 약간의 해답을 얻었다. 이번 글에서는 이를 다른 데이터로 확인해 본다.

빅카인즈에서 제공하는 가장 오래된 데이터인 1990년 1월 1일자부터 2023년 4월 30일까지 보도된 신문기사와 방송보도 전체에서 ‘양극화’, ‘빈부’, ‘격차’ 세 단어 중 최소 한 개를 포함하는 총 84만4587건의 뉴스 기사를 찾아 월별로 그 수를 그려봤다. 약 2000년도를 기점으로 한국의 양극화와 빈부격차에 대한 담론은 꾸준히 가속화하고 있다. 언론과 미디어가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전제한다면, 실로 한국의 양극화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음을 직감할 수 있다.


물론 양극화나 빈부차가 감소하고 있다는 기사가 증가했어도 같은 패턴이 잡힐 것이나 직관적으로 그럴 확률은 매우 적을 것 같다. 그간 새로 생긴 언론사나 방송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에 따라 단순히 유사 보도나 기사의 수가 많아졌을 거라는 가설 역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검색 대상을 10대 중앙일간지와 3개 방송사로 좁혀봐도 기사 수만 줄어들 뿐 우상향 패턴은 바뀌지 않았다. 미디어에 나타난 한국은 분명 심각한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국의 지니계수 추이를 보면 상황은 정반대다. 독자도 아는 바와 같이 지니계수는 0에서 1사이에서 움직이도록 되어 있으며, 0에 가까울수록 완전 평등을, 1에 가까울수록 완전한 부의 불평등을 의미한다. OECD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한 차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 0.39에서 2021년 현재 0.33으로 꾸준히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론의 우려와는 달리 심하게 기울어졌던 한국의 운동장은 점점 평평해지고 있는 중이다. 낙폭이 0.39에서 0.33으로, 2011년과 비교해 올해까지 고작 0.06 밖에 줄지 않았다고 너무 호들갑 떠는 것 아닌가. 자세히 보면 왼쪽 지니계수를 나타내는 축이 너무 촘촘해 보인다. 이런 식으로 무의미한 차이를 크게 보이도록 차트를 조작하는 수법은 항상 경계의 대상이며 나도 대학에서 그리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작은 수치로 보이는 0.06은 15% 정도의 감소폭을 나타낸다.


이번엔 같은 데이터로 그린 다른 차트를 보자. 하버드, 스탠포드, MIT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과 BBC, 이코노미스트 등 유수 언론사들이 연구나 보도를 목적으로 활용하는 공신력 있는 데이터 플랫폼인 ‘Our World in Data’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차트는 2006년에서 2016년까지의 데이터만을 포함하고 있어, 위의 차트와 직접 비교가 어려움을 미리 말해둔다. 지니계수 축을 더 듬성듬성하게 그려 위에서는 뚜렷했던 불평등 감소 추세는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위의 데이터에서 2017년부터 2021년까지의 데이터를 잘라 붙인다면 하향세는 완만하나 더 확연해질 것 같다.

이제 우리를 둘러싼 다른 나라들의 상황을 살펴보자. 영국, 룩셈부르크, 스위스, 프랑스, 독일 모두 우리보다 불평등이 더 심함을 알 수 있다. 이미 1990년대 초에 4.0을 넘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상징 미국은 부의 편중이 훨씬 심각하다. 우리에게 복지국가로 잘 알려진 스웨덴, 네덜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벨기에, 아이슬란드 정도가 우리와 비교해 더 평등해 보인다. 불평등이 심각한 아프리카나 중남미 국가들을 차트에 추가했더라면 그나마 이 정도의 차이도 눈에 잘 띄지 않았을 것이다.

실질적인 부의 불평등 문제가 점차 나아지고 있는데 반해 한국사회가 체감하는 불평등은 심해지고 있는 이 역설의 근원은 무엇일까. 분명 ‘양극화’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고, 특히 부정적 정보에 민감한 우리의 뇌에 잘 맞춰진 프레임이다. 유권자들을 분열시켜야하는 정치권이나 구독자들의 관심을 먹고사는 미디어에서 계획적으로 만들어낸 담론이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은 미디어와 정치, 군중이 있는 곳이라면 공히 적용될 수 있는 보편론일 뿐이며, 따라서 2021년 입소스(Ipsos)의 글로벌 서베이에서 당당히 빈부간 갈등 체감율 1위를 차지한 한국의 특수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한국의 인종 다양성은 2003년 현재 북한과 함께 세계 최하위를 기록한 바 있다. 최근 외국인 유입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2022년 현재 한국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4.3% 밖에 되지 않으므로 해당 수치에 큰 변동은 없었을 듯하다. 인종적 동질성이 한국사회에 가져다준 불행 중 하나가 바로 비교하는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처음부터 전혀 다른 대상과 스스로를 비교하지 않는다. 사과의 맛을 오렌지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같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고, 비교에서 오는 차이는 더 크게 느껴진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비슷한 삶의 궤적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비교의 심도 역시 더 깊어진다.

비교는 대부분 상향식으로 이뤄진다. 상대와의 비교를 통해 우월감을 느낄 때보다 열등감이나 박탈감을 경험할 확률이 더 높다. 이러한 문화에서는 사회의 최상위 0.1%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어떤 형태로든 콤플렉스를 두 어깨에 지고 살아야한다. 그것이 돈이든, 학벌이든, 직업이든, 명예든, 부모든, 자식이든, 운이든. 어쩌면 우리는 같아지고 있기 때문에 더 큰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국이 가진 인종적·문화적 동질성이 비교의 불행과 함께 가져다 준 저주이자 행운이 콤플렉스일 것 같다. 콤플렉스는 성공한 이를 끌어내리거나 스스로를 발전시킴으로써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미디어에 비친 한국사회에서 유독 전자가 더 자주 눈에 띄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 사회가 더 치열하게 양극화를 경험하길 바란다. 그것이 더 나아진 경제적 평등을 의미한다면 말이다. 다만 그것을 해소하는 주체가 온전히 개인의 발전을 위한 의지와 노력이길 바란다.

김상연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겸 한국문화데이터연구소 소장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