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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금감원, 랩·신탁 환매 중단 때 ‘편법 거래’ 알고도 눈 감았다

사태 파악하고도 시장 충격 우려
“외부에 말조심하라” 입단속까지
6개월 지나서야 본격 검사 착수

연합뉴스

지난해 기업 등 법인고객에게 랩어카운트·신탁 상품 등을 판 증권사들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고객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환매(중도해지·반환) 중단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금융감독원이 증권업계의 일부 편법거래를 묵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동성 위기를 탈출할 돈부터 마련하겠다”는 증권업계의 요구에 관리·감독 책임자가 눈을 감아줬던 것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해 10~11월 “랩어카운트·신탁을 해지하고 싶은데 증권사가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기업 제보로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당시는 기준금리가 급등하는 가운데 레고랜드 사태까지 겹치며 채권 시장이 요동치던 때였다. 2021년 8월만 해도 연 1.79%에 불과했던 신용 AA-등급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레고랜드 사태가 터진 뒤 약 2주일 만에 5.74%까지 수직 상승했다. 공포감에 사로잡힌 시장에서 이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은 거래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금감원은 랩어카운트·신탁 환매 중단 사태의 원인을 파악했음에도 증권업계와 시장에 충격을 더할 수 있는 뇌관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시 금감원 내부는 ‘랩어카운트·신탁 환매 중단을 일으킨 증권업계를 검사해야 한다’는 파와 ‘그러면 안 된다’는 파로 나뉘었다”면서 “안 된다는 파가 우세해 결국 증권업계 편법을 눈감아줬다”고 말했다.

이후 증권업계는 랩어카운트·신탁 환매를 재개하기 위해 증권사 간 합종연횡했다. KB증권과 하나증권은 상대방 증권사에 개설한 자사 명의의 신탁 계좌를 통해 폭락한 채권을 장부가로 사들이는 간접 자전거래를 벌였다. 다른 증권사에 폭락 채권을 잠시 맡겨두는 파킹거래를 한 증권사도 있었다. 랩어카운트·신탁을 원금 보장형처럼 판 증권업계가 “내 돈 달라”는 법인고객에게 돌려줄 자금을 마련하려는 조치였다. 이런 ‘랩어카운트·신탁 자산과 고유 자산 간 거래’ 및 ‘원금 보장’은 모두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또 금감원은 랩어카운트·신탁에서 환매 중단 사태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니 조심하라며 입단속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 금감원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 관계자를 여럿 불러 조언을 구했다”면서 “회의가 끝난 뒤에는 ‘이 사실이 알려지면 뱅크런(대량 인출)을 비롯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외부, 특히 언론에 말조심하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당시 문제에 눈감았던 금감원은 올해 들어서야 업무계획과 금융투자 부문 업무설명회를 통해 증권업계 검사계획을 밝혔다. 본격적인 검사에 착수한 것은 랩어카운트·신탁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진 지 6개월 지난 이달 초였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랩어카운트·신탁 시장 동향 등을 면밀히 점검해 왔다”면서 “KB·하나증권 외 증권사도 순서대로 검사해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엄정 조치해 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을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김진욱 임송수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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