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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특별한 평범함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이번 달에 서울 은평구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에서 캐릭터 그리기 특강을 하게 됐다. 주로 성인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왔는데 초등학교 5학년 수업은 처음이었다. 초등학생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지 내심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이들은 저마다 기발하고 엉뚱한 캐릭터를 그려냈다.

특강 시간에 나는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학생들에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 특별한 능력’을 꼭 적으라고 한 것이다. ‘태양광 전지를 몰래 만드는 능력 있는 아이’ ‘잠을 못 자는 사람이 꿀을 먹으면 달콤한 꿈을 꾸게 해주는 벌’ ‘많이 먹어도 건강에 해롭지 않은 라면’ 등 학생들은 저마다 비범한 능력을 뽐내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그중에 승준이가 조용히 그린 캐릭터가 눈길을 끌었다. 이름은 김평범씨, 나이는 33세. 잔잔한 성격에 썰렁한 개그를 좋아한단다. 승준이의 스케치북에는 김평범씨와 엑스트라가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흐릿하게 그려졌다.

“평범씨! 푸른 소가 용을 구하면 뭐게요?” “청소용구함!” “하나도 안 재밌어요”. 이어지는 장면에서 평범씨는 엑스트라에게 음료수를 권한다. “쭉 들이켜요. 쭉!” “와, 행복!” 이 심심한 내용이 전부였다. 게다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 능력이 고작 ‘평범씨가 건네는 음료수를 마시면 누구나 행복해지는 것’이라니. 너무 싱거운 이야기 아닌가. 나는 승준이에게 능력을 더하거나 채색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승준이가 답했다. “김평범씨는 색이 없는 게 더 잘 어울려요.”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동안 나는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영웅을 그리라고 부추긴 게 아닌가. 집으로 가는 동안 승준이의 그림이 마음에 남았다. 삶을 살아가는 데 특출 난 능력이 없어도 좋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도 중요한 발견이다. 5학년 승준이는 나에게 ‘특별한 평범함’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가르쳐주었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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