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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세상에 더없이 고맙고 아름다운 말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부산 수녀원에 찾아가 이해인 수녀님과 함께 외식할라치면 밥값을 계산하기 어렵다. 식당 주인들이 돈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짜장면 한 그릇, 밀면 한 그릇 정도의 소박한 식사인데, 이해인 수녀님을 알아본 식당 사람들은 찾아주어 고맙다고 인사한다. 수녀님이 서울 출장 오실 때도 밥값을 계산하기 어렵다. 마음먹고 좀 비싼 식당에 모시고 갈라치면 “수도자의 삶에 어울리지 않은 과분한 음식이야”라고 말리시곤 했다. 수도 생활 59년 동안 수녀님은 청빈한 삶을 지향했다. 어떤 개인적인 소유물도 자랑하지 않고, 갖고 있는 성경에도 볼펜 대신 연필로 이름을 적었다. 나중에 누군가가 그 이름을 지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유 재산이 전혀 없는 삶의 욕망이란 무엇일까. 더 많은 기도, 더 많은 사랑인가. “가난이라는 단어에는 현실적인 슬픔이 스며 있어요. 넉넉하지 못하다는 건 분명 불편한 일이니까요. 삶을 옥죄기도 하고요. 그러나 저는 살아오면서 가난이란, 물건을 적게 갖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어디에도 얽매지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알았어요. 영혼이 자유롭다는 말과 가난하다는 말은 통한다는 것을요.” 내 것에 집착하지 않을 때 ‘가난한 마음’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을 수녀님께 들었다. 주위에 많은 것을 선물하고 싶어하시기에, 돈과 가난에 대해 여쭈었다가 들은 답이었다.

모든 활동비는 수녀원의 결재를 거쳐 일정한 액수가 사용된다고 한다. 일흔아홉의 ‘어르신’ 수녀님이 지키는 수녀원의 규율은 그만큼 엄격하다. 수녀님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수녀님께 작은 선물들을 전하곤 하는데, 그 선물은 대부분 또 다른 독자에게 보내진다. 스스로를 ‘사랑의 심부름센터’라고 생각하는 수녀님이 적절한 곳으로 그 선물들을 보내고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수녀님이 밥을 샀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고 뉴스가 될 만하다. 올해 26회 ‘가톨릭문학상’을 수상한 수녀님은 그 상금 중 일부를 고마운 사람에게 밥 살 수 있도록 결재를 받았다고 한다. 5월 시상식을 마치고 수녀님은 내가 일하는 출판사 직원들이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돈 봉투를 건넸다. 받는 손이 떨리고 어색했다. 받아도 될지 자문하게 되고, 또 어떤 마음으로 주시는지 알기에 마음이 복잡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꾸만 무얼 주고 싶고/ 나누고 싶은 마음// 아픈 것도/ 내색 않고/ 끝까지 참고 싶은 마음// 장미를 닮은/ 사랑의 기쁨이겠지/ 가시가 있어도 행복한/ 사랑의 기쁨이겠지”(시 ‘사랑의 기쁨’ 중에서)

장미꽃이 활짝 핀 골목길을 걸어 도착한 식당의 밥맛은 여느 때와 달랐다. 수녀님의 책을 여러 권 만든 출판사 직원들에게 밥을 사고 싶은 마음, 자꾸만 무얼 주고 싶고 나누고 싶은 그 사랑의 마음을 알기에 특별한 맛이었다. 식사 장면을 찍은 사진 한 컷을 수녀님께 보내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좋아요”라는 짧은 답이 도착했다. 지금 만들고 있는 수녀님 책에는 여러 번 ‘삶을 정리하는 마음’이란 문구가 등장한다.

“저는 죽음의 길로 향하는 순례자라고 생각합니다. 순례자의 삶에 많은 물건이 왜 필요하겠어요. 물건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내 것이어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사는 연습을 해나가는 이가 순례자입니다.”

암 투병을 하면서 물질에 대한 편견에서 더욱 자유로워졌다는 수녀님은 가난에 대한 이상한 고집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가진 게 많으니 부자고, 가진 게 없으니 가난하다는 도식도 버려야 한다고, 물건이 자연스럽게 쌓이는 일상에서 자신은 덜 갖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노력이 모두의 선을 이룰 수 있다고 말이다.

아마도 처음이자 앞으로도 없을 듯한 수녀님의 밥값 계산은 가난과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청빈은, 갖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누는 상태라는 것을. 맑은 가난이라는 뜻의 ‘청빈’은 세상에 더없이 고맙고 아름다운 말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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