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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낙서의 즐거움

김선오 시인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백지는 일종의 놀이터였다. 모든 종이가 펜을 든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백지 앞에서는 언제나 설레고 자유로웠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종이에 펜을 대고 선을 몇 번 그으면 그림이나 글씨가 됐고, 나는 내 손끝에서 그림과 글씨라는 것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약간은 감격했으며 매번 창조주가 된 것처럼 즐거웠다. 매번 그럴듯한 종이나 펜이 있어야만 낙서가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교과서 페이지의 빈 공간 역시 일종의 백지였다. 나는 교실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들으며 생각나는 것들을 그리거나 끄적였다.

그러나 교과서에 필기가 아닌 개인적인 낙서를 하다가 걸리면 혼이 났다. 삽입된 그림 위에 낙서를 한다거나 교과서 표지 위에 이것저것 그리거나 써넣어서 마음대로 리폼을 하면 더욱 크게 야단을 맞았다. 나는 아직 남다른 행동들을 용납받지 못하는 교육 과정 속에서 공교육을 받았다. 모든 것은 정해진 규율과 질서 속에서 이뤄져야 했다. 어린 시절 얼마나 많은 창의적 행동들을 억압받아 왔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조금 분한 마음이 들지만, 이런 제약이 오히려 창작에 대한 갈증을 자아내기도 했을 것이다.

요즘은 낙서 자체가 어렵다. 펜을 들면 무언가 그럴듯한 것을 써내야 할 것 같다는 부담이 먼저 찾아온다. 나의 그림 실력이 남들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십여년 전부터 그림 낙서는 거의 해본 적이 없고, 최근에는 문장을 끄적이는 일에도 어려움을 느낀다. 처음 스케치북을 선물 받고 아무런 제약 없이 마구잡이로 낙서를 하던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을까? 피카소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 40년이 걸렸다고 말한 적 있다. 어떻게 하면 피카소보다는 조금 빨리 어린아이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낙서를 오로지 즐거움만으로 할 수 있게 될 때, 그 마음은 보다 쉽게 찾아오지 않을까.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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