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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내리는 커피] 커피만 먹고 살아야 할 서울시민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경제 대공황 여파로 커피 소비가 위축된 데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브라질이었다. 국가 재정의 70%를 커피 수출에 의존하던 브라질은 커피 가격을 지키기 위해 생두 소각, 커피나무 식재 금지, 커피 수매를 추진했지만 소비 감소와 가격 하락을 막기는 어려웠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제품 개발이 필요했다. 편리하게 마실 수 있는 커피의 개발이었다. 브라질 정부는 프로젝트를 맡길 나라를 물색했다. 브라질과 커피 전쟁을 치르던 미국, 미국과 동맹이었던 영국이나 프랑스, 파시스트들이 지배하고 있던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은 적합하지 않았다. 브라질이 선택한 나라는 중립국 스위스였고, 회사는 유아식 전문 네슬레였다. 커피와는 무관한 식품회사 네슬레가 새로운 커피 제품의 개발 의뢰를 받은 것은 기업 이미지보다는 국가 이미지의 덕을 본 것이 분명했다. 국가 이미지가 기업 경쟁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물론 좋은 국가 이미지는 이처럼 국가 발전의 초석이 되기도 하지만, 나쁜 이미지는 국가 붕괴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게 중요하다.

무려 7년간의 노력 끝에 네슬레 연구팀은 ‘네스카페(Nescafe)’라는 이름의 신제품을 내놓았다. 1938년이었다. 커피 액을 뜨거운 용기 안에서 분사시킴으로써 수분은 증발시키고 커피 방울을 급속히 분말로 바꾸는 방식이었다. 물에 녹는 분말형 커피가 탄생했다. 상품명 ‘네스카페’는 ‘네슬레의 커피’라는 단순한 의미였다. 연합국 군대에서의 인스턴트커피 소비 확대에 따라 네슬레의 수익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쟁 이후에는 세계인들이 네스카페의 편리함과 맛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네슬레는 지금 자산 430조 달러가 넘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해방과 함께 미군정 통치가 시작된 조선 땅 남쪽에 다시 커피 향이 돌아왔다. 이전과는 다른 향과 맛이었다. 바로 네슬레에서 만든 물에 녹는 커피 네스카페, 그리고 네슬레 방식을 도입한 미국의 맥스웰하우스 인스턴트 커피였다. 해방 당시에도 서울에는 다방이 60여개 남아 있었다. 총독부의 커피 음용 억제 정책이나 유흥 시설에 대한 세금 폭탄 정책에도 살아남은 다방이었다.

당시 신문에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다. 조선중앙일보는 1947년 11월 11일자 사회면에 머리기사로 ‘커피와 생선만 먹고 살아야 할 서울시민’이란 글을 실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겨울은 다가오는데 석탄 배급량은 급격히 줄었고, 김장용 배추와 무는 생산이 턱없이 부족한데,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커피와 생선뿐이었다. 이 기사가 등장한 것은 서울시가 이전 연말에 사들인 커피 3000통을 일반에게 공매한다는 광고를 모 신문에 게재했기 때문이었다. 민생보다는 수입 상품 판매에 앞장섰던 서울시였다.

이 신문 주장대로 멀지 않아 이 커피들이 시내 다방에 퍼지자 ‘물만 마시고 사는 다당(茶黨)들’은 기뻐했다. 서울시가 앞장서서 공매한 3000통의 커피와 함께 커피공화국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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