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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생계 위협” vs “해녀 갑질”… 거세지는 제주도 ‘해루질’ 갈등

마을어장 야간 금지에도 수년 째 공방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해녀들이 마을어장에서 물질을 마치고 뭍으로 나오고 있다. 제주도 제공

얕은 바다에서 맨손이나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해산물을 잡는 ‘해루질’을 놓고 제주 해녀와 해루질 동호인들 간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1년 제주도가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비어업인의 마을어장 내 야간 해루질’을 금지하는 고시를 제정했지만, 과태료 부과 건수는 이듬해 더 늘었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 바다에서 지난 28일 만난 해녀 장모씨는 “지난해 동호회원들과 몸싸움을 벌인 일로 다음 주 검찰조사를 받으러 간다”며 “해루질 얘기는 지긋지긋하다”고 화를 냈다. 장씨는 “밤마다 해녀들이 불침번을 서고, 바다 앞 어촌계 건물에 CCTV까지 달았다”며 “제주도가 해녀가 물질하는 마을어장이 아닌 배를 대는 어항구역에서만 해루질을 하도록 고시했지만, 동호인들은 어항구역으로 들어가 마을어장으로 나온다. 해경을 불러도 계도만 하고 보내니 다 소용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11월 귀덕1리 바다에서는 해녀와 동호인들 사이에 큰 다툼이 벌어졌다. 해녀들이 해루질을 하고 나오는 남성 동호인들을 발견하고 이들이 잡은 수산물 10마리를 꺼내 바다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해경까지 출동했지만 충돌은 수십분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해녀와 동호인이 함께 바다로 떨어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동호인들은 자신들이 잡은 수산물을 빼앗고 몸에 손을 댔다며 해녀들을 고소했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바다 앞에 세워진 외부인의 수산물 포획·채취 금지 팻말. 문정임 기자

귀덕1리뿐만 아니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를 포함해 도 곳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도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해루질 동호회원은 2020년 이후 크게 늘었다. 연예인들의 자연 생존기를 담은 방송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때마침 코로나19 확산으로 야외에서 취미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19년까지 미미했던 해루질 신고 건수는 2021~2022년 제주도에서만 450건에 달했다. 해녀들의 원성이 커지자 제주도는 비어업인의 야간 해루질을 금지하고 고시 위반에 따른 과태료를 부과했지만 해루질은 오히려 늘었다.

해루질 갈등이 커진 것은 관련 법 규정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현행 수중레저법은 안전장비를 갖추고 안전요원과 동행한 경우 야간 수중 레저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반면 수산자원관리법은 비어업인의 수산물 채취를 제한하고 있다.

제주에서도 그동안 해루질을 수중 레저활동으로 판단하고 단속 대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루질 동호인이 늘고, 이 중 일부가 맨손어업으로 등록해 잡은 수산물을 판매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녀와 동호인 간 갈등이 본격화됐다.

제주도가 비어업인의 마을어장 내 야간 해루질을 금지한 이후에도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고시에 따라 배가 오가는 어항구역에서는 야간 해루질이 가능하지만 해녀들은 실제 해루질이 어디에서 이뤄지는지 알 수 없다며 해루질 자체에 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귀덕1리 바다 몸싸움도 어항구역에서 나오는 동호인과 해녀 간에 벌어졌다. 일부 어촌계에서는 야간에 배를 대러 들어오다 어항구역에서 해루질을 하던 동호인과 충돌해 수백만원의 벌금을 물어주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해루질 도구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한 점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해녀들은 탐조등의 경우 배터리 무게에 제한이 없고, 잠수복도 해녀 잠수복보다 얇아 동호인들이 바다 깊이 입수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지적한다. 해녀들은 “말은 레저라고 하지만 온라인에 이들이 올린 판매 글을 보면 포획한 수산물의 양이 상당하다”며 “취미라고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제주도가 2021년 4월 마을어장에서 비어업인의 야간 해루질을 제한하자 5월 레저동호회 회원들이 제주도청 앞에서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제주도 제공

해루질 동호인들도 불만이 크다. 야간 해루질이 어항구역에서만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데다, 규정을 준수해도 해루질을 나갈 때마다 해녀들이 다툼을 걸어온다는 것이다. 도내 해루질 동호회 관계자는 “지금도 해루질을 갈 때마다 해경이 출동한다”며 “마을어장이 제주 바다의 95%인데 여기를 다 어촌계 소유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촌계에서 수산자원을 관리하기 때문에 배타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관리가 2년 이상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수산물은 자연산이라고 보는 게 맞다”며 “종패사업은 제주도가 예산을 지원하는데 혜택을 어촌계만 보는 것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마을어장 내 해녀들이 작업하지 않는 구역을 더 개방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처럼 해루질을 놓고 다툼이 끊이지 않자, 최근 국회에선 각 지자체가 지역 여건에 맞는 해루질 기준을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수산자원관리법 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제주도도 해루질 허용 범위를 다시 조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마을어장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확보해 온 어촌계와 바다가 공공재임을 강조하며 해루질 구역 확대를 요구하는 동호인 간 입장 차를 줄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주도어촌계장연합회 관계자는 30일 “마을어장은 수산업법에 따라 어촌계가 지방자치단체장으로부터 면허를 받아 독점적 이용이 허용되는 곳이다. 법 개정 취지도 해루질로부터 지역 수산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며 “레저든 업이든 어민들이 생계를 위해 관리하는 마을어장을 내어줄 수는 없다. 조만간 도내 어촌계장들이 모여 법 개정안 통과에 따른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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