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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프로야구 ‘엘롯기’

모규엽 문화체육부장


한국 프로야구에는 ‘엘롯기’라는 말이 있다.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엘롯기는 자타공인 최고 인기 구단이다. 각각 서울, 부산, 광주라는 대도시를 연고로 한 데다 특유의 충성도 높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 LG는 역대 프로야구 구단 최다인 12시즌 100만 관중을 돌파했다. 롯데는 2009년 138만18명이 야구장을 찾아와 역대 구단 한 시즌 최다 관중 기록을 가지고 있다. KIA는 홈구장뿐 아니라 어느 팀과 맞붙어도 구름 관중이 찾아오는 티켓 파워 1위 구단이다.

사실 엘롯기라는 말은 다른 팬들의 비웃음과 시샘 속에 생긴 말이다. 열성적인 팬이 많지만 그 반대로 성적은 바닥을 기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이들 세 팀은 돌아가면서 꼴찌를 했다. LG는 1994년 이후 올해까지 29년간 우승을 못했다. 가을이 되면 신기하게 성적이 떨어져 ‘DTD’(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라는 또 다른 용어를 만들어냈다. 롯데는 한술 더 떠 1992년 이후 무려 31년간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봄에만 반짝해 ‘봄데’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이대호마저 지난해 은퇴식에서 “롯데 팬들이 꿈꾸고 나 또한 바랐던 우승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KIA는 그나마 2000년 이후 두 차례 우승을 했지만 ‘해태 왕조’를 건설했던 옛 영화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그런데 올 시즌 엘롯기가 힘을 내고 있다. LG와 롯데는 선두권에서 경쟁하는 중이고, KIA도 중위권에서 호시탐탐 반전을 노리고 있다. 엘롯기의 선전에 프로야구는 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LG와 롯데 경기가 열린 지난 30일 서울 잠실구장에는 2만330명이 입장해 이번 시즌 화요일 최다 관중을 기록했다. 27~28일 롯데와 키움 히어로즈 경기가 열린 고척스카이돔은 2017년 이후 무려 6년 만에 연이틀 매진 사례를 이뤘다. 6년 전 매진 사례도 KIA와 키움이 맞붙을 때였다. 이러다 보니 항간에는 엘롯기의 선전에 가장 큰 덕을 보는 게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허구연 총재라는 말이 나돈다.

사실 올 시즌을 앞두고 프로야구는 각종 악재가 겹치며 최악의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측됐다. 한국 야구는 지난 3월 일본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졸전 끝에 1라운드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투타에서 세계 야구와 현격한 기량 차까지 노출돼 더욱 큰 비난이 들끓었다. 여기에 일부 선수의 성추문·도박, 단장 뒷돈 요구 논란, KBO 자회사인 KBOP 관계자 배임수재 혐의 조사 등이 줄줄이 이어지며 시즌도 시작하기 전에 초상집이 됐다. 그런데 엘롯기의 선전으로 극적인 반전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KBO와 야구계는 엘롯기에서 비롯된 지금의 흥행에 만족하지 말고 자생력을 키우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즉 유망주 육성과 선수들의 인성 관리, 국제 경쟁력 강화 등을 이뤄내야 한다.

야구계에서 잡음과 불미스러운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실제 요며칠 WBC에 출전한 일부 야구 대표팀 선수가 도쿄에서 대회 기간 술자리를 가졌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선수들이 본선 2라운드 진출 분수령인 3월 9일 호주전 전날 밤부터 경기 당일 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일본전 전날인 9일에도 술자리를 벌였다는 것이다. 당시 최악의 성적을 냈기에 대표팀 선수들의 음주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또 9월에는 중국에서 열리는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예정돼 있다. 자칫 아시안게임에서도 메달 획득에 실패하면 WBC 실패 때보다 더 큰 비난이 찾아올 수 있다. 프로야구 위기는 언제든지 찾아온다.

hirte@kmib.co.kr

모규엽 문화체육부장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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