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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닐이 ‘합법’이라는 그의 말에… 마약 수렁 빠진 여성들

1분기 여성 사범 1037명… 54% 늘어
상당수 남성 위력·속임수에 첫 노출
수치심에 더 음지로… 재활 어려워
“단약하려면 인간관계 정리가 필수”


여성 마약사범 증가에 ‘경고등’이 켜졌다. 올해 1분기 검거된 여성 마약사범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넘게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퐁당 마약’(음료나 술에 몰래 마약을 타는 것) 사례처럼 많은 여성이 애초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마약에 손을 댔다가 중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빈약한 마약중독 재활시스템 역시 여성 마약중독자의 회복을 어렵게 하고 있다.

대검찰청의 마약류 월간동향 자료를 보면 올 1~3월 여성 마약사범은 1037명으로 집계돼 지난해 1분기에 비해 54.3%(365명) 늘었다. 5년 전인 2018년 1분기(389명)보다 3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마약사범 중 여성의 비율도 최근 몇 년간 증가세가 뚜렷하다. 2018년 15.7%(389명)에 그쳤던 여성 비율은 올해 25.1%로 올라섰다. 검거된 마약사범 4명 중 1명은 여성인 것이다.

여성 사범 중 남성 마약중독자의 위력과 속임수 탓에 마약류에 처음 노출된 이들도 상당수다. 이후 중독 사실을 부정하거나 숨기면서 치료받는 데 소극적이다 보니 점점 마약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적절한 치료와 회복 절차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전문가들은 마약중독이 범죄인 동시에 질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재판을 통해 명령이 내려지지 않는 한 치료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

‘그놈’ 믿었던 20대 “나뿐만이 아니다”


최근 국민일보와 만난 20대 여성 음악가 김모씨도 한 남성을 만난 2019년 이후 2년이 넘도록 마약에 허우적댔다. 동종 업종의 한 남성 동료가 자신에게 “합법적인 의약품이고 생리통에도 효과가 좋다”며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흡입을 권한 것이 시작이었다. 김씨는 단 한 번의 흡입으로 중독 증상이 생겨 자신에게 펜타닐을 건넨 남성에게 약물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지금은 ‘좀비 마약’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며 “몸속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하고 심박수는 비정상적으로 뛰었다. 밥도 제대로 못 먹어 몇 개월 사이 몸무게가 15㎏나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약물중독으로 심정지까지 경험할 정도로 삶이 밑바닥까지 추락했다고 한다. 어떡하든 펜타닐을 구하려고 병원을 전전했고, 펜타닐을 구할 수 없으면 다른 정신과 약물을 닥치는 대로 복용했다.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폐쇄병동에도 들어갔지만 그때뿐이었다. 그의 주변엔 마약중독자만 남을 정도로 인간관계도 망가졌다. 김씨는 “액정이 깨진 휴대전화 하나 말고는 모든 걸 잃었던 순간 나를 중독시킨 그 사람을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신앙을 갖게 된 뒤 극적으로 삶을 회복해 현재 1년6개월 넘도록 단약 중이지만 주변에는 마약으로 삶이 파괴된 사람이 아직도 많다고 한다. 그는 “저처럼 동일인에게 마약을 강제로 당한 후 힘들어하던 가까운 언니가 지난달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며 “NA모임(Narcotics Anonymous·마약류 의존자 회복을 위한 자조모임)에 나가 보면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 많다. 미용사도, 대기업 고위직도 마약 앞에서는 똑같이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재활치료 할 곳 찾기 어려워


전문가들은 여성 마약사범 증가세의 이면에 이런 위력에 의한 중독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마약사건 전문 김희준 법무법인 LKB 대표변호사는 “텔레그램으로 마약류 구입이 굉장히 쉬워진 것도 사실이지만 ‘퐁당 마약’처럼 음료나 술에 마약을 몰래 타서 중독시키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며 “대부분 병원에서는 치료가 어렵다거나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 등으로 여성 마약중독자를 받기 꺼리고, 제대로 된 재활시설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국이 선정한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지정병원’ 21개 중 현재 중독자 치료를 감당하고 있는 곳은 인천참사랑병원이 유일하다. 나머지 병원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알려졌다. 한 마약중독 치료 전문가는 “마약중독 회복 과정에서 병원은 보통 일차적인 단약과 해독을 담당한다”며 “이후 중독치료를 꾸준히 관리해 줄 재활센터는 거의 없어 중독자 스스로의 의지로 극복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마약에 손을 댄 여성 마약사범이 수치심이나 죄책감 탓에 쉽게 재활에 나서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민간 마약중독 치료센터 인천다르크 최진묵 센터장은 “일선에서 20대 여성 중독자가 늘어나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여성을 위한 재활센터가 생긴다면 치료받겠다고 들어올 사람이 줄을 섰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마약중독 상담사는 “타인에 의한 강요 등으로 처음 마약을 접한 뒤 중독된 이들은 치료가 더 어려운 경향이 있다”며 “자신이 중독된 원인으로 타인을 탓하다 보니 자기 인정과 반성이 부족해 재활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여성 마약사범이 마약을 끊기 위해선 주변 환경을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고 중독 회복자들은 말한다. 한 상담사는 “여성들이 중독되면 주변 남성 중독자들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며 “이전의 관계를 단절하기 힘들어하는데, 단약을 위해선 마약과 관련돼 있는 모든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매일 제때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며 “특히 남자친구로 인해 마약을 접했다면 반드시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 단약을 하더라도 중독자끼리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경우 한 사람의 실패로 둘이 같이 넘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당부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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