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병석 (4) 마을 분위기에 서서히 동화되며 순수한 마음 돋아나

낯선 동네에 이사 온 불편함과 두려움이
순박한 아이들의 웃음과 장난스런 행동

그룹 여행스케치의 리더 조병석씨가 어린 시절 집에서 밥을 지었던 가마솥.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허둥지둥 보내고, 급작스런 이사와 함께 맞이하게 된 전학. 촌스러운 티가 팍팍 풍겼고, ‘싼티’까지 솔솔 머금은 옷차림과 ‘뗏구정물’이 줄줄 흐를 것처럼 투박한 얼굴을 가진 3학년 2반의 동기생들.

처음에는 말도 잘 섞지 않았고, 너무너무 어색해서 불편했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걸음 한걸음씩 차츰차츰 익숙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놀라움까지 생겼던 그 시절의 소년. 부엌에서 끼니를 위해 밥을 짓고 솥뚜껑을 열었을 때 구수한 누룽지 냄새에 코끝부터 기분 좋은 반응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듯, 학교 분위기에 천천히 녹아 스며들었다.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따스함을 전해주는 순수한 동요의 울림처럼 조금씩 조금씩 동화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는 나.

새로 이사 온 마을에서는 공동 화장실을 함께 쓰며 살아야 했고, 공용 수도꼭지도 여러 개가 있었다. 시내버스 노선이라곤 570번 달랑 하나뿐이었던, 변두리 동네 ‘평화촌’. 철거민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주해 온 사람들을 수용하려고 의도적으로 서울시에서 만들었다는 그 동네.

6·25전쟁 이후 급하게 피난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판자촌은 아니었지만, 마을의 모든 시설들이 공동체의 공익적인 삶을 위해 조성된 상황이라 화려하거나 높은 고층 건물들은 하나도 없었다. 소박함과 척박함의 경계 사이에서, 생활고가 자주 느껴지는 마을의 분위기는 초등학교 3학년 전학생이었던 나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혔다.

하지만 순수하고도 순박한 아이들의 꺄르르르 천진난만한 웃음 소리와 장난스런 행동들, 이웃사촌 마을 주민들의 따뜻하고 수수했던 말투와 움직임들은 싫든 좋든 상관없이 매일 매일 자연스레 보고 또 볼 수밖에 없었다. 피부 호흡을 통해 느껴질 만큼 충분하게 체득돼 자라날 수 있는 1차적인 환경이 됐다. 아는 지인이 아무도 없는 낯선 동네로 이사를 온 뒤 왠지 모를 불편함과 두려움의 생각들만 잔뜩 튕겨져 나왔던 소년의 마음 밭 한가운데엔 ‘순수’라는 작고 예쁜 싹이 돋아났다.

장남인 나의 장래를 위해 선택하게 된 부모님의 급작스런 이사. 낯설고도 어색함이 흐르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적응하고 겪어내고 익숙해져야 했던 일련의 과정들은 유연한 삶을 살아가려 하며 직업의 귀천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늘 겸손하려는 마인드를 가진 지금의 나에게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됐다.

서울의 오른쪽 끝자락 경기도 성남시의 모란시장과도 그리 멀지 않았던 변두리 마을 ‘평화촌’이라는 흑백 필름 속. 그 시절의 이런 저런 다양했던 삶의 흔적들은 지금까지도 작사 작곡 편곡 연주 가창으로 녹여낼 수 있는 값진 샘물이 됐고, 날마다 ‘감사’라 새기며 빛을 낸다.

바로 그 마을에서 하나님도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

정리=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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