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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나는 너의 친구야

요한복음 15장 12~15절


최근 SNS에서 청년들이 공유하는 ‘꼰대의 육하원칙’ 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중 내가 자주 쓰는 말이 있다면 아마도 꼰대일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내가 누군지 알아’ ‘무엇을: 네가 뭘 안다고’ ‘어디서 : 어딜 감히’ ‘언제: 옛날에 나 때는 말이야’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왜: 내가 그걸 왜’

사춘기 청소년에겐 바른말을 하는 세상 모든 사람은 꼰대입니다. 꼰대의 대상에는 부모도 예외 없이 포함입니다. 그래서 부모보다 친구를 훨씬 좋아합니다. 바른말을 해주는 부모보다 오히려 또래 친구의 말을 더 신뢰하며 무게감을 둡니다.

왜 그들에게 이런 방황과 갈등이 생길까요. 자신의 부모는 늘 바른말은 해주지만 나를 이해하거나 나와 함께 해주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나를 충분히 이해하고 나와 모든 것을 함께 해줍니다.

오늘날 수많은 청년, 외롭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겐 바른말만 하는 꼰대가 아니라 나를 공감하고 나와 함께 해주는 진정한 친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짜 친구라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거야. 이제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줄게.”

제가 청소년 시절 교회에서 자주 불렀던 찬양 중 ‘나 무엇과도’라는 찬양이 있었습니다. 그 찬양의 마지막 가사가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 되기 원합니다’였습니다. 하루는 교회 찬양팀이 주일 오후 찬양 예배에서 그 찬양을 감동적으로 불렀는데 예배가 끝난 뒤 교회 어르신들에게 한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어떻게 ‘감히’ 주님을 친구로 대하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과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 노래는 앞으로 부르지 말라”는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을 친구가 아닌 꼰대의 이미지로 만들어 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청년들과 다음세대는 더 이상 예수님을 따라가려 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진정으로 함께 해주는 친구는 따라갈 수 있지만 바른말만 하는 꼰대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셔서 세상의 수많은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당시 모두가 정죄하고 외면하던 창녀들과 세리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나의 삶에도 오셔서 참된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제 저와 여러분을 향해 부탁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 15:12) “내가 너희의 친구가 되어 준 것처럼 너희도 세상의 친구가 되어주어라.”

교회는 예수님을 대변합니다. 죄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영혼, 삶이 힘겹고 연약한 자들, 참된 진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는 사람들을 향한 교회의 태도는 정죄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꼰대가 아니라 사랑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친구여야 합니다.

가수 윤복희씨는 처절한 인생의 아픔, 그리고 질병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자신에게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시며 하신 말씀을 그대로 노래로 지어 불렀는데 그 노래가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 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습니다.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오늘도 주님은 여러분을 향해 손을 내미시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친구야.’ 나의 친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은혜로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남빈 목사(뉴송처치)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 소속인 뉴송처치는 2017년 청년문화의 중심지인 홍대에서 개척됐습니다. 청년세대를 일으키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가는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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