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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 종사자 ’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책과 길] 더티 워크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한겨레출판, 496쪽, 2만5000원


멕시코 출신의 플로르는 성추행을 일삼던 의붓아버지로부터 도망쳐 미국의 닭고기 정육공장에 취직했다. 상자에서 닭을 꺼내 컨베이어벨트의 쇠고랑에 발을 걸며 살아있는 닭은 직접 칼로 목을 잘라야 했다. 처음에 플로르는 울면서 다시는 닭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노동으로 인한 육체적·심리적 고통이 심해지면서 닭을 걱정할 겨를이 없어졌다.

지저분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려는 인간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는 그런 존재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부단히 옮겨왔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게 됐을 뿐 결코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어디 있으며, 무엇이 그들을 더럽다고 낙인 찍었을까.

미국의 작가이자 탐사보도 전문기자 이얼 프레스는 대중이 알려고 하지 않는 ‘더러운’ 문제들로 독자들의 시선을 돌려놓는다. 저자는 교도소 정신병동과 대규모 도살장, 드론 전투기지 등 사회 뒤편에 숨겨진 노동현장부터 실리콘밸리의 첨단 테크기업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이뤄지는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필수노동을 다룬다.

비인간적인 산업 시스템과 지역 사회·정부의 겉핥기식 대응, 자본주의의 과도한 이윤 추구, 대중의 무관심은 더티 워크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선량한 사람들’은 비윤리적인 행위를 대리인에게 위임한 뒤 책임을 편리하게 회피한다”며 “더러운 일을 떠맡은 사람들은 무슨 불량배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무의식적 위임’을 받은 이들”이라고 강조한다.

노동 환경에 대한 묘사와 인터뷰, 자료 등을 덧붙여 이얼 프레스는 ‘더티 워크’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떠맡겨지는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 문제를 둘러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공동체적 차원에서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NYT), 퍼블리셔스 위클리, 시카고 트리뷴 등의 매체에 올해의 주목 도서로 소개됐다. 지난해 저널리즘 도서 부문에 수여하는 힐만상을 수상했다.

이얼 프레스는 브라운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뉴욕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월간지 프로그레시브 기자로 일하면서 미국 정부가 인도네시아 독재자 수하르토의 인권 탄압을 묵과하고 군사 지원을 도모한 정황을 폭로해 제임스 애런슨 저널리즘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절대적 신념’ ‘양심을 보았다’ 등이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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