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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자본주의니까…”라는 신화

박진규(서울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


빌라·오피스텔 전세사기 사건,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조작 사건, 그리고 김남국 의원 코인 사태까지. 몇 달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소동들이다. 경제와 밀접히 연관돼 있고 수백억원을 넘나드는 돈이 걸려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지 집주인, 차액결제거래(CFD), 클레이스왑 등 사건 전후를 설명하는 생소한 용어 때문에 비전문가가 전모를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 사건들은 각각 ‘빌라왕’과 ‘건축왕’, 부당이득을 취득한 작전세력, 위선적 정치인의 탐욕이 빚어낸 일탈로 정리되는 듯하다. 하지만 무고한 여러 생명의 극단적 선택을 비롯해 청년 세대의 무력감 등 엄청난 사회적 피해를 고려하면 범법자를 색출해 처벌하는 것만으론 부족해 보인다. 시시각각 변하는 경제 환경에서 미처 대비하지 못한 허점을 교활하게 파고들어 ‘대박’을 터뜨리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멈출 리 없다. 더 근본적인 얘기가 필요하다.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배경에 자리한 “자본주의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만연한 인식에 주목한다. 많은 이들의 평소 입버릇이다. 성과에 따른 보상의 과도한 격차, 출발선의 차이가 초래하는 공정의 파괴를 접할 때마다 손쉽게 가져다 쓰던 말이다. 성공하면 영리한 투자이고, 실패하면 미비한 제도 탓이라는 모순 역시 이번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 연예인에게서만 발견되는 건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버린 이런 생각은 언제든 더 교묘한 경제 범죄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신화’에 불과하다. 두 가지 잘못된 전제를 따르기 때문이다. 첫째는 자본주의를 마치 단일한 시스템인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하나의 경직된 모델을 자본주의 원형으로 설정하고 이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현실에서 자본주의를 실천하는 형태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무시하기 때문에 틀린 전제다. 소유, 경쟁, 이윤을 둘러싼 자본주의 근본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법적 제도와 국가 개입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와 실천의 모양은 너무도 다양하다. “어쩔 수 없다”라는 허무주의적 뉘앙스가 시사하는 무소불위의 자본주의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잘못된 전제는 따라야만 할 자본주의 원형을 잘못 설정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윤 추구 욕망을 무한정 허용하는 체제이며, 이를 제한하려는 어떤 시도도 그 이념을 훼손하는 걸림돌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런 전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경박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99%를 위한 경제학’에서 김재수 교수는 ‘시장’과 ‘기업’을 혼동하고, 경쟁이 만들어내는 효율성의 기본 조건인 공정성을 가벼이 여기는 시장주의를 “짝퉁”이라 부른다. 이런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규정하는 건 자유시장 이론을 제공한 주류 경제학에서도 비판의 대상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가장 잘 이해한 경제 체제임이 틀림없지만 이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완전할 수 없음도 분명하다. 나름의 규범을 마련해 본능적 욕망을 제어하는 건 인간의 숭고한 특성이다. 자본주의는 윤리적 원칙을 위반하면서까지 이윤을 추구해도 무방한 시스템이 아니라 사회가 합의한 규범을 준수하는 조건 아래 이윤 추구와 효율성의 미덕을 허용하는 시스템이다.

돈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드문 세상이 돼 버렸다. 하지만 돈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설명돼서는 안 되는 것들이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숨 쉬는 세상이다. 돈과 탐욕이 절망적 현실의 가장 큰 원인이 된 시대에는 경제 공부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건 “자본주의니까 어쩔 수 없지”의 거짓 신화가 아니라 “어떤 자본주의를 추구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이다.

박진규(서울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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