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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준법 투쟁과 의사들의 선택

남도영 논설위원


법과 현실 괴리 심한 의료 현장
국민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어

간호법, 의사수 증원 요구에도
타협 대신 반대 모습만 보여

자신만의 성에 갇힌 엘리트는
결국 국민 분노에 직면하게 돼

의사들이 이익집단의 길 대신
존경받는 의사의 길 걸었으면

간호법 사태와 관련해 가장 당황스러운 단어는 ‘준법 투쟁’이었다. 대한간호사협회는 지난달 파업 대신 준법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5일 동안 불법 진료 신고센터를 운영했더니 1만2189건이 신고됐다. 검사, 처방, 튜브 관리, 봉합과 같은 수술 보조 행위들이었다. 어떤 간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출근해서 하는 일 대부분이 불법 진료에 해당할 수 있다”고 전했다. 1만2189건 모두를 불법 진료로 단정할 수 없다. 의료법에는 간호사의 업무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간호사의 어떤 행위가 불법 진료인지는 개별적인 법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법을 지키는 게 투쟁이 될 정도로, 의료 현장에서 법과 현실의 괴리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의료 현장에 불법이 만연하다면 해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을 바꾸는 것이다. 간호사가 검사와 튜브 관리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제도를 고치면 된다. 둘째 간호사가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의사가 자기 일을 하면 된다. 간호법 제정안은 첫 번째 해법으로 나온 것이다. 법안 의미에 대한 해석은 간호사협회와 대한의사협회가 정반대라서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 어쨌든 전반적인 간호법 제정안의 취지는 간호사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처우를 개선하자는 것이었다. 간호법 제정안은 의사 집단의 강력한 반발에 막혀 결국 폐기됐다. 둘째 해법으로 제시되는 방안 중 하나가 의사 수를 늘리자는 것이다. 현장에 의사가 부족하니 간호사가 의사의 역할을 하는 게 불법 진료의 핵심이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넓히는 첫째 해법이 안 된다면 의사 수를 늘려서 의료법에 규정된 의료행위를 의사가 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의사 수가 다른 선진국에 비교해 부족하다는데, 의사들은 의사 수 확대에 반대한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의료 관계자들의 복잡한 내부 사정과 이해관계를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의사들이 해법을 계속 거부하고 자신의 이익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득권 세력처럼 보인다.

직역 간의 갈등과는 별개로 의료 현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국민적 불안감이 커졌다. 최근 병원 응급실을 찾다가 어이없이 사망하는 사람들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지난 30일 차량에 치인 70대가 병원 중환자실을 찾다가 숨졌다. 지난 3월에도 10대 학생이 2시간 동안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사망했다. 언론은 이런 사건을 ‘응급실 뺑뺑이’라고 표현한다. 이유를 물어보면 크게 두 가지다. 중환자 병상이 부족하거나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이 없어서다. 응급실 뺑뺑이가 의사들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응급실 운영 방식의 문제, 충분한 보상과 지원, 법적 책임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의료체계는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유지 관리돼 왔다. 그런데 이런 의료 체계가 흔들리고 있는 징후가 뚜렷하다.

의료 체계에 큰 문제가 생겼다면, 누군가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 체계는 의사를 중심으로 설계됐다고 한다.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 못지않게 의사들의 책임이 막중한 이유다. 의사협회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을 환자 정보 유출 우려를 이유로 반대하고, 의대 정원 확대 요구에 국가의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처우 확대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간호법은 의사들의 진료 범위 침범을 우려해 반대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매년 실시하는 ‘한국의 직업정보’ 2021년 조사에 따르면 평균소득이 가장 높은 직업 상위 10개 중의 8개가 의사였다. 성형외과의사 정신과의사 내과의사 안과의사 등의 순이었다. 나머지 2개는 기업 고위 임원과 한의사였다. 약한 자와 강한 자가 다툴 때, 강한 자가 조금씩 양보해야 문제가 풀린다. 지금 의사들의 모습은 강한 자가 자신의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엘리트 집단이 자신들의 성에 갇혀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다 결국 국민의 분노에 직면했다. 정치인과 검사 집단이 그런 길을 걸었다. 의사들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존경받는 의사의 길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이익집단의 길이다. 의사들의 선택이 첫 번째 길이었으면 한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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