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세계 고급 두뇌 적극 고용해야… 제도 뒷받침 필요”

[국민 초대석] 정만기 무역협회 상근부회장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같은 미래 성장산업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출산율이 뚝 떨어지면서 인력난이 해소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해법은 뭘까. “기업에서 인도 등 세계의 고급 두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인원 제한 없이 외국인 고용을 허용하도록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대만을 따라잡으려면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서 경쟁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역설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24일 대만 타이베이의 한 호텔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했다.

정 부회장은 “대학 재정도 열악해지고 있어 반도체 전문가와 교육 인프라 구축을 위한 교육재정교부금 제도 개편, 해외로의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인센티브 같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도체 연구·개발(R&D) 세액공제를 경쟁국과 동등한 수준으로 확대하고, 주 52시간 근로제 같은 노동규제를 기업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에 대해서는 “미국 중국 모두와 거래하는(transactional) 실용적 중립주의를 취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대만 반도체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나.

“대만은 팹리스와 파운드리, 후공정으로 연결되는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측면에서 한국과 큰 격차를 보인다. 특히 공정 미세화가 물리적 한계에 다다르면서 첨단 패키징 기술 개발, 파운드리와 후공정 업체 간 협력 생태계 구축이 중요 과제로 떠오르는데 대만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격차를 줄일 방안은.

“기술력 외에도 고급인력 공급 확대, R&D 생산성 제고, 노동유연성 확보 등으로 생태계 저변을 강화해야 한다. 대만처럼 인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의 소프트웨어 고급인력 활용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R&D 세액공제 대상을 개별 기술이 아니라 산업 전체로 확대하고, 지원 기간도 외국처럼 10년 정도로 연장해야 한다. 노동규제를 완화해 R&D 집중도와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정만기(왼쪽)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이 지난달 23일 대만 타이베이 국제컨벤션센터(TICC)에서 대만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취임 후 첫 대만 출장에서 양대 경제단체인 상업총회·공업총회와 경제협력 의향서(MOU)를 맺었다.

-무역협회 상근부회장에 취임한 지 8개월가량 지났다. 기억에 남는 성과는.

“한국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이 2.74%까지 추락한 건 경기 변동 외에 수출산업 기반 약화에 기인한다는 걸 발견한 게 기억에 남는다. 한국의 주당 실근로시간이 2015년 44.2시간에서 지난해 37.9시간으로 줄면서 경쟁국보다 일하는 시간이 급감한 것도 확인했다.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해야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있다.”

-한국 수출이 처한 현실은.

“올해 1~4월 반도체의 수출 감소 영향률은 60.4%에 달했다. 중국·베트남 수출 부진이 컸다. 여기에다 2017년 이후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로 제조업 설비투자가 줄고 해외투자가 급증하는 등 수출산업의 기반 자체가 약화했다. 지난 5년 동안 주당 실근무시간이 4.6시간 감소하고, 실질 최저시급은 28.4%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은 0.2시간 줄었고, 최저시급은 오히려 9.5% 감소했다. 한국 수출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다.”

-타개책이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노동유연성 제고와 임금 안정이 필수다. 최저임금은 동결하거나 생산성 향상 범위 내로 안정돼야 한다. 내국인 고용 대비 일정 비율만 허용하는 외국인 고용 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어줘야 한다. 우량 수출기업이 쓰러지지 않도록 고금리와 조세 부담의 완화도 필요하다.”

-올해 수출은 더 나빠지나.

“5월까지 실적과 중국의 제한적 리오프닝 효과 등을 고려할 때 당초 예상보다 올해 수출 감소 폭이 더 커질 수 있다(무역협회는 연초에 올해 수출이 8.4~9.5% 감소한다고 전망했다). 6월 말에 수정 전망을 발표한다.”

-자국 우선주의 물결 속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최대 이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역내 제조역량 강화, 공급망 내재화를 추진하면서 한국 기업의 전략적 대응이 불가피하다. 희토류, 배터리 소재 등을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새로운 경제질서 형성을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간 대결로 바라보는 대신 공급망 다변화 계기로 인식해 실리 위주의 전략을 펼쳐야 한다.”

-EU에 이어 미국도 중국과 관계를 ‘디커플링’(de-coupling)’이 아닌 ‘디리스킹’(de-risking)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미·중 대립 뿐만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미국 중국 모두와 거래하는(transactional) 실용적 중립주의를 취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전쟁을 방관하거나 미·중 대결에 비동맹을 유지하며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하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브라질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25개국을 실용주의 노선을 펴는 ‘T25’(Transactional 25)로 정의했다.

-고립·은둔청년,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고립·은둔청년 증가와 낮은 출산율은 심각한 국가 문제다. 지난 2월부터 청년재단과 ‘청장년 이커머스 창업스쿨’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8월 중에 청년세대를 대상으로 ‘MZ세대가 생각하는 저출산 원인 및 해결 방안’ 경진대회를 열 계획이다.”

타이베이(대만)=글·사진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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