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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6월 3일] 합당하냐


찬송 :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516장(통 26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6장 17~20절

말씀 : 세례자 요한과 바리새인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금식을 자주 했습니다. 예수님이 무리와 어울려서 먹고 마실 때 세례자 요한은 수시로 금식했고, 바리새인들도 일주일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금식했습니다. 그 점에서 두 세력은 통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헤롯왕에 대한 태도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롯왕의 부당한 결혼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옳지 않다”(18절)고 말했습니다. ‘옳지 않다’는 말은 ‘합당하지(엑세스티) 않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바리새인들이 즐겨 쓰는 말입니다. 이들은 백성들이 율법을 제대로 지켰는가 늘 감시하고, 백성들의 행동이 합당한지 판단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을 비판할 때도 ‘합당한가’라는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었을 때 안식일에 합당치 못한 일을 했다고 예수님께 항의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합당하냐는 말을 아예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일반 백성들에게 이렇게 엄격하게 합당한지를 따지고 들던 바리새인들이 유독 헤롯왕에 대해서는 꿀 먹은 사람처럼 침묵했습니다. 헤롯왕의 불의를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헤롯왕을 지지하는 세력인 헤롯당과 손을 잡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기까지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롯왕에 대해서 ‘합당한가’ 따졌지만 바리새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두 세력의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바리새인들의 행동은 이중적입니다. 이들은 힘없는 백성들 앞에서는 호랑이처럼 행세하면서도 권력자인 헤롯왕 앞에서는 쥐새끼처럼 움츠러들었습니다. 틈만 나면 백성들에게 들이대던 ‘합당하냐’는 질문도 헤롯왕한테는 던져본 적이 없습니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태도지요. 이들은 세례자 요한처럼 목숨을 내걸고 악한 권세자에게 저항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합당하냐’는 질문은 힘없는 사람이든 힘 있는 사람이든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던져야 마땅합니다. 저는 바리새인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네들은 성경에서 나단 예언자가 밧세바 사건 때 다윗왕에게 합당치 않다고 직언한 일, 엘리야 예언자가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 대해서 아합왕에게 합당치 않다고 선포한 일을 한 번도 읽어본 일이 없느냐.’ 그럼 뭐라고 대답할까요.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막 6:19~20)

성경은 헤롯왕이 세례자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20절)으로 여기고 두려워했다고 말합니다. 의로움과 거룩함이 요한의 신앙 덕목입니다. 이에 반해 바리새인들은 거룩함을 추구했지만 의로움에는 무관심했습니다. 거룩함이 합당한지는 이 잡듯이 따졌지만 의로움이 합당한지는 일언반구도 묻지 않았습니다. 의로움이 빠진 거룩함은 반쪽 신앙입니다. 거룩함과 의로움,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사모해야 할 신앙의 목표입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가 악한 세력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거룩함과 의로움, 신앙의 이 두 목표를 동시에 사모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오종윤 목사(군산 대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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