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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투해도 웃는다 배짱의 ‘아기 호랑이’

[스포츠인] 선발 꿰찬 ‘열아홉살 좌완’ KIA 타이거즈 윤영철

뉴시스

6회 2사 주자 없이 2스트라이크 노볼. 팀이 1-0으로 앞서던 상황에서 홈런을 맞았다.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기까지 단 한 걸음을 남겨두고 나온 실투, 결국 리드를 뺏기고 만다. 아쉬울 만한데도 일단 웃는다. 안타를 맞거나 주자를 보낸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결같이 환한 표정으로 다음 타자를 마주한 뒤 보더라인을 향해 다시 힘차게 공을 꽂아 넣는다. 프로 데뷔 두 달 만에 KIA 타이거즈의 선발 자리를 꿰찬 열아홉살 좌완투수 윤영철의 얘기다.

입단 전 고교야구 시절부터 ‘좌완 에이스’로 통했던 윤영철은 2023 KBO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번으로 KIA에 지명됐다. 그는 4월 15일 프로 데뷔 이래 현재까지 치른 8경기에서 모두 선발로 나섰다. 첫 경기에선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지만 빠른 적응력으로 무섭게 성장 중이다. 소화 이닝 수가 차츰 늘면서 지금은 안정적으로 5이닝 이상씩 소화하고 있다. 4월 기준 4.85였던 평균자책점은 5월 들어 2.03으로 떨어졌다. 가장 최근 치른 31일 KT 위즈전에선 5⅓이닝 1실점 호투를 펼쳐 시즌 세 번째 승리를 챙겼다.

마운드 아래에선 어떤 모습일까. 지난달 25일 대전 둔산동의 한 카페에서 윤영철을 만났다. 막판 홈런 실점 위기를 넘기고 데뷔 첫 퀄리티스타트(QS·6이닝 이상·3자책점 이하)를 달성한 다음날이었다. 축하 인사를 전하자마자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기쁘기도 하지만 솔직히 아쉬운 게 더 크다”며 입을 뗀 그는 “바깥쪽으로 빼려던 공이 가운데로 들어가는 바람에 홈런을 맞았다”며 뼈아픈 실투 순간부터 곱씹었다.

실투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윤영철은 의도대로 투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곧바로 분석에 돌입한다. 영상을 통한 분석보다는 마운드 위에서의 감과 포수의 판단을 신뢰하는 편이다. 그는 “영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게 더 많다”고 말한다. “타석과의 거리나 스윙의 크기 등 타자들마다 다른 특징적인 요소는 주로 마운드에서 보는 편이에요. 그걸 확인한 다음에 ‘못 치겠다’ 싶은 구종을 골라 던져요. 처음 만난 타자는 무조건 포수를 믿고요.”

어느 경기든 처음엔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항상 첫 회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때도 분석이 먼저다. 포수의 가슴팍을 조준해 던지면서 그날의 스트라이크 판정 성향을 살핀 뒤 볼을 하나씩 빼며 영점을 조절한다. 구심 파악이 끝나면 다음 회부터는 수월하다. 윤영철은 “1회만 잘 넘기면 긴장이 별로 안 된다”며 웃어보였다.

물론 첫 회부터 꼬일 때도 있다. 4월 15일 키움 히어로즈와 맞붙었던 데뷔전이 딱 그랬다. 당시 윤영철은 선두타자 이용규를 상대로 9구 승부 끝에 볼넷 출루시킨 뒤 1회에만 대량 5실점했다. 결국 4회에 조기 강판된 그는 마운드를 내려오는 순간 활짝 웃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한 윤영철만의 습관이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면 그는 “최대한 빨리 털어내려 한다”고 했다. 실투를 잘 만회하려면 분석 만큼이나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안타를 맞으면 일단 포수에게 물어봐요. 가운데로 몰렸는지. 그렇다고 하면 ‘다음번엔 잘 던져야지’하고 넘겨요. 잘 던졌는데도 타자가 잘 쳤으면 ‘타자가 잘 친거다’하고 넘기고요. 최대한 빨리 마인드를 좋은 쪽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 같아요.”

“마운드 위에서 웃는 모습이 많은 것도 아마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 해서이지 않을까 싶어요. 타자를 마주할 때면 스스로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표정이 딱딱하면 기죽어 보이고 긴장되어 보이니까 일부러 웃어요. 어릴 때는 웃는다고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지도해주셨던 감독님들한테 ‘너는 왜 맨날 웃고 다니냐’는 핀잔을 받곤 했죠. 지금은 습관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웃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윤영철의 강점으로 더 자주 언급되는 건 안정적인 제구와 경기 운영 능력이다. 버리는 볼이 많지 않고, 어쩌다 파울 홈런을 맞아도 곧바로 몸쪽 직구를 찔러 넣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 프로의 승부사다운 모습에 “신인같지 않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자신감의 원천은 역시 제구다. 윤영철은 자신의 가장 큰 강점으로 제구를 꼽으며 “제구가 잘 잡혀야 경기 운영도 잘 할 수 있고 투구 수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비결이 있다면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해온 ‘타게팅 연습’이다.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지만 기억이 흐릿한 어린 시절부터 그는 야구와 가까웠다.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집 근처 서울 목동 야구장을 찾았고, 틈이 날 때마다 주차장에서 형과 캐치볼을 했다. 윤영철은 “타겟을 정해 놓고 몇 번이고 던졌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어엿한 프로 선수로 자리잡은 윤영철을 김종국 KIA 감독도 기특하게 지켜보고 있다. 김 감독은 윤영철의 선발 등판을 앞두고 매번 “5이닝 3실점 정도만 막아줘도 충분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매 경기 감독의 기대를 넘어서려는 윤영철이다. 지금은 구속을 끌어올리기 위해 웨이트를 꾸준히 하고 있다. 제구를 잡기 어려운 커브도 계속 던져보는 중이다. 김 감독은 윤영철의 활약에 “리그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며 “초반보다 직구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 파울이나 헛스윙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감독의 말대로 그는 입단 후 KIA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팀에 적응하고 있다. 그의 적응을 돕는 데 가장 적극적인 건 ‘대투수’ 양현종이다. 윤영철의 등 번호 역시 그가 추천한 것이다. 유명한 좌투수들이 달고 있는 번호라며 양현종이 보여준 후보들 가운데 윤영철은 13번을 골랐다.

“번호를 고르자마자 (현종 선배가) ‘그럼 은퇴할 때까지 이 번호만 다는 거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최대한 그럴 생각이에요.”

신인왕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선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윤영철은 “주어진 경기를 해내기 바쁘다 보니 경쟁자를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경쟁자인 한화 이글스의 동갑내기 투수 김서현에 대해선 “서현이는 보직도 다르고 던지는 유형도 다르다”며 오히려 “같은 팀의 양현종, 이의리 선배님처럼 포지션이 겹치는 선수들에게 자극을 받는다”고 전했다. 그러면 누가 탈 것 같은지 예상해보란 질문에는 “그래도 제가 받아야죠”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제 막 첫 발을 뗀 신인 투수의 목표는 뭘까. 윤영철은 “원래 올 시즌 목표로 ‘5승’을 생각했다”고 밝혔다. 생각보다 빠른 페이스에 “5승은 곧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는 목표를 고쳐 잡았다. “우승도 해보고 싶고 상도 타고 싶지만 부상 없이 오래 광주에서 뛰는 게 현재로선 가장 큰 목표예요.”

대전=글·사진 이누리 기자 nur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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