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맞아? 문 없는데?… 지정 대피소 가보니 ‘엉망’

대피 소동 뒤 대피소 점검해 보니…
안내도 없고 구호물품도 안 갖춰
백령도 한 곳은 아예 문 잠겨 있어

1일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마련된 민방위 대피소가 지상에 노출돼 있다. 오른쪽은 서울 마포구의 한 건물 지하주차장에 마련된 민방위 대피소의 모습. 한쪽 구석에 사용하지 않는 의자 등이 쌓여 있다.

지난 31일 벌어진 ‘경계경보 오발령’ 소동은 지역 민방위 대피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도 됐다. 국민일보는 1일 행정안전부 안전디딤돌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서울시 지정 대피소들을 찾아가 봤다. 서울에는 총 3222곳의 대피소가 있다.

우선 서울시내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꼽히는 강남구 선릉역 인근의 대피소를 찾아봤다. 이곳은 주택가와 상가, 업무용 빌딩이 섞여 있어 실제 경계경보가 발령되면 큰 혼란이 예상되는 지역이다. 안전디딤돌 앱을 켜서 주변 대피소 찾기를 누르자 현 위치와 가까운 대피소 여러 곳이 소개됐다. 전날 과다접속으로 ‘먹통’이 됐던 것과 달리 접속은 원활했다. 다만 실시간 위치 정보는 제공하지 않아 가는 방법은 다른 지도 앱을 통해 알아봐야 했다. 일부 대피소는 건물명만 안내하고 있어 해당 건물의 어디에 대피소가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실제 선릉역 4번 출구 기준 인접한 대피소 5곳을 가봤지만, 건물 입구에 대피소 안내조차 제대로 적히지 않은 곳이 다수였다. 건물 뒤편에 있는 지하주차장 앞까지 찾아가서야 대피소 안내 표시판을 볼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대피소 중 시설이 가장 나은 편인 선릉역 역사는 대피하더라도 10㎡(3평)당 12명이 함께 공간을 나눠 써야 했다. 혼잡도가 높은 곳 중 하나인 서울역도 상황은 비슷했다. 반경 500m 안에 대피소 6곳이 있는데, 이 중 3곳이 서울역 1·4호선 역사 내부였다. 최대 수용인원은 4만4000여명인데 출퇴근 시간 실시간 유동 인구가 5만명을 훌쩍 넘는 걸 감안하면 대피공간이 부족해 보였다.

상당수 대피소는 최소한의 구호물품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비상시 대피 안내 등은 역 근무 직원들이 하지만, 대피소는 장소 개념으로 역에서 따로 비상구호물품을 준비하는 건 없다”며 “지방자치단체 소관이라 잘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4월 마포구청의 표본 점검을 받았던 거구장대피소도 장기 대피를 위한 구호물품 등은 보이지 않았다. 한쪽 구석엔 사용하지 않는 의자 등이 가득 쌓여 있었다. 건물 관계자는 “식당에서 사용하는 응급구호품 정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디딤돌 앱 정보와 다른 곳도 있었다. 서울 시청역 근처 대피소 중 한 곳인 K빌딩의 경우 앱상에는 지하 1·2층이 대피소로 나오지만, 지하 1층에는 대피소가 아닌 상가들만 있었다.

전날 오전 인천 백령도에서도 진촌2리에 있는 6호 대피소에서는 일부 주민이 잠긴 문 탓에 약 10분간 피신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대피소를 평소 드럼 연습장으로 사용하던 주민 동호회가 악기 보호 등을 위해 비밀번호로 여는 잠금장치를 해놨기 때문이다. 노인 인구가 많은 백령도 특성상 두께 30㎝에 달하는 대피소 철문을 여는 데 어려움을 겪은 주민들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대피소 운영·관리 정책을 원점부터 재점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현철 국가위기관리학회 부회장은 “민방위 훈련으로 대피소 장비를 점검해야 하는데 훈련을 4년간 안 했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모든 재난 상황에서 쓸 수 있도록 공용 대피소로 지정한 게 문제다. 미사일 등 공격에 버틸 수 있게 지어야 하는데 형식적으로 대피소를 지정한 것”이라며 “생화학 무기 등의 공격이 있으면 장기간 대피소에 머물러야 해 식량 등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용현 김재환 성윤수 기자, 인천=김민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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