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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은둔형 외톨이

고세욱 논설위원


영국 BBC 방송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6개월 이상 사회 접촉이 없는 이들)를 조명했다. 은둔하는 한국 젊은이들은 자신이 사회 또는 가족의 성공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보고 사회의 높은 기대치에 압박감을 느껴 고립의 길을 택한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청년 삶 실태조사’에서 은둔형 청년의 비율은 2.4%인 24만4000명 규모로 추산됐다. 경북 경주시 인구와 비슷하다.

BBC 보도 직후인 지난달 28일 부산의 은둔형 외톨이인 20대 정유정이 생전 처음 본 또래 여성을 이유 없이 잔인하게 살해하고 유기했다. 정유정은 고교 졸업 이후 5년간 별다른 직업 없이 집에서 은신했다. 휴대전화에 친구 연락처도 없는 등 사회적 유대 관계가 철저히 단절됐다. 전문가들은 정유정이 자신의 핸디캡(무직)을 극복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인기 있는 과외교사인 피해자의 정체성을 훔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BBC의 분석과 비슷하다. 은둔형 외톨이의 원조는 일본의 ‘히키코모리’다. ‘틀어박힌 인간’이란 뜻으로 경기 불황이 짙어진 1990년대부터 본격 부각됐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지난해 히키코모리는 약 146만명이다. 90년대 청년 히키코모리 상당수가 중년이 돼서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40대 이상의 2%가량이 히키코모리라고 한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살해한 40대 남성, 2019년 어린이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0여 명의 사상자를 낸 50대 남성도 히키코모리로 분류된다.

히키코모리 출신의 소설가 다키모토 다쓰히코는 “내가 좋아하는 것(글쓰기)을 찾게 되자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 ‘김씨표류기’에선 여주인공이 밤섬에 표류된 남성과의 소통을 통해 3년 만에 방에서 뛰쳐나왔다. 정유정의 범행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만 외톨이들이 범죄의 유혹을 끊는 데 주변의 관심과 격려,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소통 부재, 획일주의 등 우리 사회가 많은 외톨이를 양산하는 환경에 젖어 있기에 더욱 그렇다.

고세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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