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과몰입과 극단적 고립, 또 다른 정유정 나올 수도”

범죄 전문가들이 진단해보니

살인 등 혐의를 받는 정유정이 지난 2일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일면식 없는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유기한 정유정(23)이 장기간 외부와 단절된 채 지낸 것으로 조사되면서 ‘은둔형 외톨이’ 등의 사회적 고립이 결국 ‘묻지마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키운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주변으로부터의 고립과 불우한 가정환경, 성격장애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먼저 정씨를 일반적인 반사회적 성격장애(사이코패스)로 분류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4일 “정씨는 경계성 성격장애로 보여진다”며 “가정으로부터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했고, 학교에서는 친구도 없었다. 살인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가졌을 때 옆에서 이를 교정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고립된 섬이었던 정씨가 가상세계에 심취하면서 성인으로서의 정신적 성숙도를 갖추지 못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분석도 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사이코패스 특유의 치밀하고 교활한 행동패턴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평소 소설이나 방송 등을 통해 접한 살인범죄를 엉성하게 모방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가상세계에 빠져 나이에 맞는 정신적 성장이 이뤄지지 못했고 이러한 ‘정신적 퇴화’가 범행을 저지르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성장 과정에서의 애정결핍, 차별 등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복감과 같은 열등의식이 이미 내재화됐으며, 자기 세계를 구축한 뒤 ‘살인하고 싶다’는 환상을 실행으로 옮기게 됐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고립이나 은둔이 모두 범죄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묻지마 범죄 가능성을 높이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치안정책연구소의 ‘현실불만형 묻지마 범죄에 대한 고찰’ 보고서를 보면 묻지마 범죄 가해자의 대다수가 은둔형 외톨이 경험이 있던 것으로 나온다. 이 교수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더욱 악화했다”며 “일시적으로 묻지마 범죄가 늘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반대로 이번 사건을 은둔형 외톨이가 아닌 각성한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범죄로 보는 시각도 있다.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우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모두 치밀하고 철두철미한 것은 아니다”며 “장기간 고립된 환경 속에서 내재돼 있던 반사회성 인격장애가 발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정씨는 지난달 27일 오전 6시쯤 긴급체포된 후 4일간 거짓 진술로 일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경찰청 등에 따르면 정씨는 살인동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고 내게 시신을 유기하라고 시켰다”고 허위 진술했다. 이후 “피해자와 다투다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을 바꿨으나 역시 거짓이었다. 정씨는 경찰이 관련 증거를 제시하고 가족의 설득까지 이어지자 지난달 31일 범행을 자백했다.

이가현 김용현 김이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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