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혈액 부족이 부른 의약품 품절… 소아 수두 환자 등 불똥

‘혈장분획제제’ 품귀 현상

수두 환자용 치료제 재고 바닥
수입 원료 채산성 이유 공급 끊겨
고령화 저출생 등으로 헌혈 부족
혈장제제 품절 환자 피해 가시화


혈장분획제제를 정맥 주사로 투여하는 장면. 오른쪽 작은 사진은 혈장을 원료로 만든 알부민 제제. 셔터스톡·제약사 제공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가필수의약품 알부민, 면역글로불린 등 ‘혈장분획제제’의 품귀 현상이 최근 대형 의료기관까지 번지고 있다. 정부와 제약사들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혈액 부족 사태가 지속되면서 의약품 제조에 쓰이는 ‘원료 혈장’의 공급 불안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제약사들은 그간 일선 병원과 관계 기관, 도매상에 수 차례 혈장제제의 일시 품절을 알리며 수급 우려를 표시해 왔다. 급기야 지난달 말 한 제약사는 소아 수두 환자나 산모 등 치료에 필요한 ‘수두사람면역글로불린’의 장기 품절을 통보했다.

소아 수두용 혈장제제, 장기 품절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당 제품을 생산하는 제약사는 “현재 가용 재고는 150바이알(병) 미만이며 월 50바이알 내외 사용 경향으로 보아 1~2개월 내 품절이 예상된다. 새로운 혈액을 확보하더라도 혈액원 실사 및 원료 변경에 따른 신규 허가 절차가 추가로 필요해 12개월 이상 장기 품절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특수 혈장으로 제조되는 수두사람면역글로불린의 경우 국내 원료 자급이 어려워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해외 혈액원에서 채산성을 이유로 더 이상 공급이 어렵다고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향후 혈장제제 수급 상황에 따라 소아 면역저하자나 중증의 암 환자 등 치료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혈장제제는 혈액 성분 중 혈장을 원료로 만들어진 의약품이다. 혈액은 55%의 혈장(노란 액체)과 45%의 혈구(적혈구·백혈구 혈소판)로 구성된다. 혈장 안에는 알부민 58%, 면역글로불린 38%, 혈액응고인자 4%의 단백질 성분이 들어있다. 이 성분들을 가공해 완제 의약품으로 만든다. 원료 혈장은 수혈용으로 쓰이는 전혈 중 남는 일부와 혈장 성분헌혈로 공급된다.

문제는 고령화와 저출생,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헌혈이 감소해 국내 혈액 부족 사태가 상당기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5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헌혈 인구는 2019년 261만3901명에서 지난해 244만5003명으로 6.9% 줄었다. 혈장 헌혈자는 같은 기간 43만9516명에서 36만6870명으로 19.8%나 감소했다. 혈장제제용으로 제약사 2곳(GC녹십자, SK플라즈마)에 공급된 원료 혈장은 2019년 52만6650ℓ에서 지난해 45만5137ℓ로 급감했다(한마음혈액원 혈장 공급량 제외). 혈장 공급량이 50만ℓ 아래로 떨어진 건 코로나 유행이 시작된 2020년 이후 내리 3년째다.


혈액관리본부 측은 “코로나 유행 이후 감소한 혈액 재고량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현재는 수혈용 혈액 수급에 우선을 두고 있으며 향후 혈장 헌혈도 증대해 나가겠다”고 했다.

원료 혈장의 국내 자급률은 2015년 95.4%에서 2021년 45.1%로 6년 새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혈액관리본부는 “의약품 제조용 혈장은 수혈용 혈액과 달리 부족할 경우 국외서 수입해 충당하고 있다”고 했지만, 코로나로 인한 헌혈 감소 등 해외 여건 역시 녹록치 않다. 제약사들은 국내 원료 혈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혈장 수입 증대로 위기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반면 고령화로 인한 암 환자, 코로나 감염에 의한 중증 환자, 자가면역질환자의 증가 등 영향으로 혈장제제의 사용 수요는 국내외적으로 계속 커지는 추세다.

보건복지부는 원료 혈장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혈액관리법 시행령 일부를 개정해 오는 22일 시행에 들어간다. 민간에 가격 결정이나 공급이 맡겨졌던 기존 시스템에서 정부가 매년 혈장 수급 계획을 수립·시행하는 등 국가관리체계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와 달리, 해외 수입 혈장 가격은 시장경제에 따라 매년 상승하고 있으며 통제도 쉽지 않다.

글로벌조사기관(MRB)에 의하면 미국의 혈장(전혈) 공급 가격은 2015년 ℓ당 125 달러에서 2018년 134 달러로 올랐고 2021년 163 달러에 이어 지난해엔 189 달러로 껑충 뛰었다. 최근 7년간 연평균 6.08%씩 상승했다. 반면 국내 2개 제약사의 알부민 20%제제(100㎖)의 가격은 같은 기간 각각 연평균 0.91%, 0.90% 오르는 데 그쳤다. 현재 혈장 수입은 미국 한 곳에서만 가능하다.

아울러 나라마다 혈액관리 규제 및 방식의 차이로 이동과 사용 기간 등 여러 가지 까다로운 사항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공급량을 신속하게 늘릴 수도 없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제약사 관계자는 “국내 혈장 공급 부족과 해외 수입 의존도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혈장 가격 상승 등 이중고를 제조업체가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환자 치료에 악영향 가능성

우려되는 점은 이 여파로 환자 피해가 가시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제약사는 지난해 9월 알부민 5%제제의 일시 품절을 일선 병원장과 도매업체에 통보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 수두사람면역글로불린의 장기 품절 통보까지 모두 8차례 공급 차질을 알렸다.

당장 혈장제제가 없어 사용하지 못하거나 치료가 지연되는 등의 심각한 사례 발생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충분한 혈장제제를 공급받지 못하면 의료 현장에선 적극적 처방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한 대학병원 약제팀 관계자는 “지난해 8월부터 가장 많이 사용하는 혈장제제의 품절 공문을 2차례 받았고 근근히 공급받고 있다. 그나마 공급받지 못하는 곳들도 있을 수 있어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꼭 필요한 환자에게만 처방되도록 조절하고 있다”고 전했다. 알부민이나 수두사람면역글로불린 등 혈장제제는 대체 의약품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취급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국가가 국내 원료 혈장의 효율적 수급뿐 아니라 수입 혈장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입 혈장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수입 혈장 공급처 다변화, 미국 대비 엄격한 헌혈 대상 기준 완화, 완제 의약품의 약가 현실화 검토 등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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