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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대의 K푸드] 비빔밥, 국밥, 갖은양념… ‘퓨전 문화’의 민족, KOREA

최근 전세계에선 ‘K’ 열풍이 거세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는 빌보드를 정복했고, 오징어게임·더 글로리 등 드라마는 전세계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기생충은 칸과 오스카를 휩쓸었다.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K팝, K드라마, K무비 등 K콘텐츠에서 시작된 K컬처의 글로벌 영향력은 이제 K푸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아직 본격적인 여름 전이지만 이달 달력은 연이은 연휴일정에 박스오피스도 미리 몸을 풀었다.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3’는 초고속 흥행속도로 1000만 관중을 넘보고, 마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도 올해 개봉한 외화 중 가장 빠른 속도로 4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시리즈 중 최고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인구대비 천만 관객 돌파 기록이 많은 한국인들의 영화 사랑 덕에 전세계 최초 개봉 국가로 한국이 선택되는 것은 이제 익숙하다. ‘가오갤3’에 이어 ‘분노의 질주’, ‘트랜스포머’ 시리즈 등 굵직한 프랜차이즈 영화들이 최근 모두 우리나라에서 최초 개봉했다.

배우, 제작진들의 방문 인터뷰에서 한류에 대한 언급 또한 가히 경쟁적이다. 흥행을 위한 전략적 이유도 있겠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인터뷰들도 많다. 특히 우리 음식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보일 때는 말뿐 아닌 표정에서도 읽힌다. ‘가오갤3’의 주연 크리스 프랫은 다이어트 식품에 ‘김치’를 꼽는 것으로 유명하고, 맨티스역의 프랑스 배우 폼 클레멘티에프는 한식 애호가로 이번 내한 중 “멸치볶음밥을 특히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인터뷰 후에 프랫이 배우들과 육회, 된장찌개 등 한식 코스를 즐기는 쇼츠 영상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오갤3’ 출연진이 언급한 음식들만 잠시 살펴봐도 김치, 멸치, 볶음밥, 육회, 된장찌개. 거기에 한식 코스라면 대략 예상이 된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먹거리의 원천이 실로 다종다양하다. 들과 산, 강과 바다, 거기에 갯벌까지 포함된다. 자원이 적다, 땅이 좁다고 하지만 지구상에서 하루 이틀 정도 걸어서 산에도 갈 수 있고 바다에도 갈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가도 가도 산만 있는 곳이 있고, 사막뿐인 곳도 많다. 산악이나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나라와 민족들은 아예 바다 생선을 맛볼 수 없는 곳들도 있고, 사막이나 동토지대에 자리 잡은 국가는 말 할 것도 없다. 또 어떤 나라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가리는 음식이 많은 경우도 있다. 음식의 가짓수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양한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별다른 금기 없이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있으며 현재도 이와 같이 하고 있는 땅이 바로 한반도인 것이다.

한반도는 오래된 땅이다. 여러 땅덩어리들이 이동하고 충돌해 생긴 땅이며, 다양한 환경 속에서 화성 및 변성 작용을 받았다. 덕분에 지질학적 특성상 주요 토질과 암반의 구성이 선캄브리아기 때부터 생성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삽이 부러지는 딱딱한 땅이라고 불평을 자아내게 되는 이유기도 하지만 덕분에 깨끗한 물을 만드는 땅이다. 음용수로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지하수의 경우 이 화강암이 자연적인 필터 작용을 해서 불순물을 걸러내고 깨끗한 지하수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강물이든 산골짜기 물이든 쉽게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 주변에 있으니 농사는 물론 국, 탕, 찌개 등 국물 음식이 발전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물은 꼭 사막 지역만 귀한 것이 아니다. 지금의 유럽 평원에 자리 잡은 무리들 가운데서도 물 때문에 옛날에 고생한 경우가 많았다. 독일, 프랑스 지역의 물에는 석회가 많아 식수로 먹기가 어려웠기에 물 대신 맥주와 와인이 특별히 발달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반면 한반도는 산, 들, 강과 바다가 모두 가까운 지리적 환경과 깨끗한 물 덕분에 상대적으로 먹을 것이 풍부하고 다채로웠던 것이다.

음식에 대해서 엄청난 실험정신을 가진 것, 그것도 우리 민족의 또 다른 특징이다. 중국 만주는 시대적인 변환기에 다양한 민족들이 몰려들어 개척을 했던 역사가 서린 땅이다. 우리 민족도 많이 그 곳을 찾았다. 주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는데 그러한 여러 나라 사람들 가운데 아녀자들이 가끔씩 바구니를 끼고 산에 오르는 민족은 한민족 우리 밖에 없었다. 이전부터 우리는 산에서 나는 채소, 산채의 맛과 풍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냉이, 달래, 고사리, 취나물, 명이나물 등 한민족의 입에는 맛있는 산나물, 들나물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지구상 여러 민족들 가운데 들에서 나는 채소, 야채를 먹는 경우는 많지만 산에서 나는 채소를 먹는 나라는 아주 드물다. 산채비빔밥의 나라가 아닌가.

이렇기에 새로 들어오는 먹거리에 대해서 거부감도 적었다. 조선 후기 감자가 들어오면 감자를 먹고, 고구마가 전래되면 고구마 요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유럽 사람들은 감자가 너무 흉측하게 생겼다고 처음엔 잘 안 먹었던 역사가 있다. 이 당시 전래된 고추도 원래 우리 음식재료가 아니었지만 현 시점 고춧가루, 고추장이 없는 한국 음식이 없으니 음식에 대한 실험정신이 유난히 강한 음식 문화의 증거라 하겠다.

음식도 창조고 예술이다.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다가 새로운 식재료를 찾아냈고 또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저렇게도 만들어 보다 새로운 조리법도 개발한 것이다. 한 가지 식재료를 가지고도 날 것으로도 먹고, 구이로도 먹고, 찜해서도 먹고, 전골로도 먹고, 찌개로도 먹고, 탕으로도 먹었다.

또 계절별, 부위별로도 다른 음식을 만든다. 명태 한 마리를 놓고도 황태, 동태, 북어, 노가리로 나누고 명란젓, 창난젓으로 알과 내장까지 먹는 민족이다. 김치만 해도 재료의 종류별로 배추김치, 무김치, 갓김치, 파김치, 고들빼기 김치 등 야채의 종류만큼이나 많고, 또 익힌 정도에 따라서 겉절이에서 물김치, 묵은지 등등 수없이 응용을 했다.

우리 음식의 온갖 실험정신은 양념에서 드러난다. 서양 음식이 특히 그렇지만 대부분의 나라는 양념이 단출하다. 샐러드에도 몇 가지 드레싱을 한꺼번에 쓰는 경우는 드물다. 향신료도 몇 가지 없다. 근데 우리 음식은 갖은 양념, 온갖 양념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반찬이 넘쳐나는 문화가 된 것. 그리고 그렇게 만든 반찬은 주위 사람과 나눠 먹었다. 텃밭에서 따거나, 주위에 흔히 있는 재료로 반찬을 만들다 보니까 좀 맛있게 잘 됐다 싶으면 이웃과 나눠 먹었다. 재료 구하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에 그만큼 음식 인심도 후했다. 한국의 놀러 오거나 살러 온 외국인들은 한식상의 엄청난 가짓수에도 놀라지만 그 많은 반찬들을 무료로 무한 제공, 무한 리필 해준다는 것에 더 놀란다. 음식이 순서대로, 정해진 코스로 나오는 서양 음식의 경우 밑반찬은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같은 동양 문화권이고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권이라고 해도 반찬이 우리만큼 많은 나라는 없고 반찬을 거의 무한정으로 공짜로 주는 경우는 우리나라의 한식당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식당도 외국의 한식당에는 그렇게 주지 않는다.

한식의 경우 반찬의 가짓수가 너무 많다 보니 먹는 방법도 상당히 독특해졌다. 만드는 사람은 한꺼번에 잔뜩 음식을 상에 올렸고, 또 먹는 사람은 이것저것을 한꺼번에 입에 넣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한 번의 식사에 거의 한 종류의 음식만 먹고, 특히 한 입에는 절대 다른 음식을 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식은 반찬도 너무 많고 여러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먹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예 여러 가지를 싸서 먹게 되었다. 상추, 배추, 깻잎, 호박잎, 김 등에다가 고기, 생선 등 이것저것을 한꺼번에 넣어서 쌈을 싸서 먹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여러 가지를 아예 다 넣어서 한꺼번에 비비는 비빔밥도 만들었다. 또 밥에다가 국을 더해서 국밥을 만들었고, 떡에 다가 국을 더해서 떡국을 만들었고, 마침내는 술도 섞어서 마시는 폭탄주까지 만들어내는 우리다. 섞어 먹는 데 익숙한 우리의 음식 문화, 퓨전의 문화는 수천 년 누적되어온 한민족의 식습관이 작용한 때문이리라.

7월에 개봉예정인 ‘미션 임파서블 7’이 엉뚱한 이유로 기다려진다. 이번에 방한하면 총 11번째가 되는 ‘친절한 톰 아저씨’ 배우 톰 크루즈가 어떤 한국 음식을 언급할지 궁금하고 덕분에 영화 보러 가는 날 저녁은 너무도 많은 우리 한식 중에 메뉴 정하기가 한결 쉬워질 것 같은 즐거운 상상 때문이다.

이희대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겸 전 만개의레시피 전략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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