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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6월 11일] 일상 언어가 신앙의 언어로


찬송 : ‘성령이여 우리 찬송 부를 때’ 195장(통 17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20장 15절


말씀 : 우리가 흔히 쓰는 신앙 용어 중에는 일상 용어에서 비롯된 말이 꽤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주여’가 있습니다. 본래 ‘주여’는 윗사람을 높여 부르는 존칭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실망하여 울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말을 건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착각하고 ‘주여’라고 부르며 예수님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여기에서 ‘주여’는 그저 일반적인 존칭에 불과합니다.

유월절에 몇몇 헬라인들이 예수님의 제자 빌립을 찾아와서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때 헬라인들이 빌립을 ‘주여’라고 부릅니다.(요 12:21)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이를 ‘선생이여’라고 고쳐 번역을 했지만 헬라어 성경에는 ‘퀴리에(주여)’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심지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빌라도 총독을 ‘주여’라고 부릅니다.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마 27:63) 이렇게 일반적인 존칭이 신앙적인 의미를 띠면서 예수님 혹은 하나님을 부르는 특별한 말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헬라어로 ‘파루시아’라고 합니다. 이 말도 본래는 그저 ‘오는 것’ ‘찾아오는 것’ 정도의 뜻입니다.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바울은 해결사로 디도를 보냈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디도가 좋은 소식을 안고 돌아오자 바울을 기뻐하면서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고후 7:6) 놀랍게도 디도가 오는 것이 ‘파루시아’로 표현돼 있습니다. 파루시아는 그냥 온다는 말인데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로 쓰이면서 특별한 말이 됐습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간에 정결법 논쟁이 벌어집니다. 마가복음은 정결법을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해설을 덧붙입니다.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막 7:4) 여기에서 ‘씻음’은 ‘밥티스모스’로 무엇을 물에 담그는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빵 한 조각을 잔에 넣어 적시는 것도 ‘밥토’입니다.(요 13:26) 그저 담근다는 말이었는데 신앙적인 뜻으로 쓰이면 회개의 표시로 몸을 물에 담그는 세례가 됩니다.

부활이라는 말도 본래는 ‘일어섬’이라는 말입니다. 누워 있던 사람이 일어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단순히 일어서는 것을 넘어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서는 부활을 뜻하는 말로 바뀝니다. 구원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구원은 위험한 곳에서 건져내는 것, 구해내는 것, 병을 치료하는 것이었지만 신앙적으로 죄에서 건져내는 구원의 의미로 바뀌었습니다.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 주인은 농부들에게 소출을 받으려고 종을 보냅니다. ‘보낸다’는 말은 ‘아포스톨로’입니다. 이 말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면 ‘아포스톨로스’ 즉 사도라는 특별한 뜻을 갖게 됩니다.

일상적인 것에 신앙의 의미를 담으면 특별한 것이 됩니다.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평소에 하찮게 여겼던 것들이 특별한 것으로 다가옵니다. 특별한 사람 특별한 모임 특별한 시간 특별한 장소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 눈앞에는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우리는 우리의 일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였던가 새삼 놀라게 됩니다.

기도 : 하나님, 저희 눈을 열어 기이한 것들을 보게 하소서. 저희가 사는 곳이 몰약 산과 유향 언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오종윤 군산 대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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