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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로 대표 뽑는다고 민주주의? ‘民治’가 빠졌다

[책과 길]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김민철 지음, 창비, 256쪽, 1만9000원

‘왕을 잡어먹는 인민’(1793년)이란 제목의 작자 미상 그림. 인민을 상징하는 거인이 왜소해진 왕의 목을 쥐고 있다. 좌측의 대포와 우측의 병영은 인민 대 군주의 전쟁을 표현한 것이다. 창비 제공

대한민국은 왜 민주주의 국가인가?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국민의 투표로 국가를 운영하는 대표자를 선출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아마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투표로 대표자를 뽑는 대의제가 민주주의의 핵심일까.

김민철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인민’과 ‘통치’를 결합한 ‘democracy(민주주의)’라는 단어의 기원에 따르면 “민주정은 인민이 통치하는 정부형태”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정에서 인민이 하는 일이 ‘투표’가 아니라 ‘통치’라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뛰어난 사람을 투표로 선출해서 통치하게 하는 것은 소수 귀족이 통치하는 귀족정에 더 가깝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투표는 인민을 정치로 끌어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민의 정치 참여를 방지하기 위해 고안, 활용돼왔다.

‘인민의 통치’라는 기준으로 보면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나라들 중 민주정으로 분류될 나라는 거의 없다. 19세기에 등장해 지금은 민주주의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봐야 할까. 김 교수는 말뜻으로 보면 “자유주의적 요소가 가미된 민주주의”라야 맞지만 실상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자유주의가 집어삼킨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지닌 ‘민치’라는 의미는 역사상 실현된 적이 없으며 이제는 거의 잊혀지고 말았다. 대신 투표나 입헌주의, 법치 등이 민주주의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는 지성사라는 방법을 통해 민주주의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해왔는지 살핀다. 프랑스혁명과 유럽 지성사 연구에서 주목할만한 논문들을 생산해온 김 교수가 그간의 논문들을 종합해 대중적인 교양서로 재구성했다.

“민주주의는 수천년 동안 혐오, 경멸, 비난, 증오의 대상이었다.” 책은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민주주의는 18세기 프랑스혁명 전까지도 철저히 비주류였으며 혐오스런 개념이었다. 김 교수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서양의 사상가들은 하나같이 최악의 정부형태로 민주정을 꼽았다”며 고대 아테네부터 18세기 계몽주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례를 든다. 볼테르는 민주정을 “악당들의 통치”라고 불렀다. 프랑스혁명 이전까지 “인민이 직접 권력을 쥐는 것은 다수의 폭정 또는 군사정권을 초래하기 쉬우므로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는 역사관·세계관이 지배적이었다.”

어째서 민주주의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었는가? 그리고 어떤 계기로 민주주의가 인정받기 시작했는가? 책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답한다.

김 교수는 민주주의에 붙어 있는 ‘군중의 폭정’이란 이미지에 결정적 변화가 일어난 계기로 프랑스혁명 당시 등장한 민주파를 주목한다. 민주파는 인민주권론은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세습군주제와 직접민주주의의 폐단을 모두 극복하는 대안으로 대의민주주의를 내세웠다. 무엇보다 인민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그들은 역사에서 귀족정이 저지른 잘못이 인민이 저지른 것보다 천배나 끔찍하다면서 교육과 언론을 통해 인민의 판단력을 높이면 인민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봤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비로소 하나의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됐다.

수많은 서양 사상가들이 등장하지만 책은 경쾌하게 읽힌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민주주의의 역사를 훑어가다 보면 인민 다수의 판단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걸 알게 된다. 민주주의가 가진 치명적 위험이 무엇인지도 이해하게 된다. 지금도 대중의 판단이 잘 교육받고 훈련된 엘리트들의 판단보다 열등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김 교수는 “민주정의 힘은 인민의 지성에서 나온다”면서 “민주정은 보통사람의 목소리가 통치를 좌우하는 정부형태”라고 정의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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