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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다룬 가장 중요한 책’ 33년 만에 완역

한국전쟁의 기원(전 3권)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글항아리, 1권(704쪽·4만원),
2-1권(624쪽·3만5000원), 2-2권(656쪽·3만5000원)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모습. 한국 현대사를 다룬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로 평가되는 ‘한국전쟁의 기원’은 ‘누가 전쟁을 시작했는가?’ 대신 ‘왜 전쟁이 벌어졌는가?’를 질문하며 전쟁의 기원을 해방 직후로부터 추적한다. 글항아리 제공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은 소련의 지령을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됐다는 전통적 학설에 이의를 제기한 책으로 유명하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책이 마침내 완역돼 나왔다. 1981년 미국에서 출간된 1권은 5년 뒤에 국내에서 번역됐으나 1990년 완성된 2권이 한국어로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출판사 글항아리는 33년 만에 한국어 완역본을 선보이면서 2권을 ‘2-1’과 ‘2-2’로 분권해 총 세 권으로 구성했다. 세 권을 합치면 총 2000쪽에 달한다.


번역자는 김범(53)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이다. 그는 이 책을 번역하는데 5년의 시간을 바쳤으며 복잡한 만연체로 구성된 문장들 때문에 독해가 어려울 때면 일본어 번역본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2002년에 이 책이 완역됐다. 김범은 “한국 현대사를 다룬 가장 중요한 저작 가운데 하나가 그 사건이 일어난 당사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먼저 완역됐다는 사실은 우리 학계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고 적어놓았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올해 팔십 세의 커밍스는 한국어판에 13쪽 분량의 긴 서문을 새로 써서 넣었다. 이 서문에서 그는 책을 쓰게 된 과정과 출간 이후 논란들을 회고했다. 1권은 프린스턴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됐고 미국 역사학회에서 주는 ‘존 킹 페어뱅크 저작상’을 받았지만 한국에서는 전두환 정권에 의해 금서로 지정됐다. 커밍스는 금서 지정이 영예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저자 브루스 커밍스. 국민일보DB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내 두 가지 신념은 내가 이 책들을 쓸 때보다 더 깊어졌다”고 현재의 생각을 전했다. 두 가지 신념이란 “군대와 경찰에서 일본에 협력한 거의 모든 한국인을 다시 고용하기로 한 미군정의 결정이 무엇보다 가장 압도적이고 우선적으로 중요하다는 것”과 “1945년에 등장한 인민위원회는 매우 중요했지만 한국전쟁 관련 문헌에서 거의 완전히 무시돼왔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미군정의 친일세력 재기용과 인민위원회 말살 과정을 주요하게 다루며 한국인들의 열망에 반하는 방향으로 추진된 미국의 잘못된 개입이 해방 이후 한반도의 핵심 갈등을 주조했고, 이를 둘러싼 내전적 상황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지나치게 국내적 요인을 강조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본 자신의 시각이 여전히 옳다고 재확인한 것이다.

커밍스는 서문에서 책의 오류를 인정하기도 했다. 그는 “2권을 완성하고 몇 년 뒤 소련의 한국전쟁 관련 문서가 기밀 해제되면서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는 데 소련이 더 강력하게 개입했음을 보여줬다”며 “내가 북한의 독립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썼다.

‘한국전쟁의 기원’은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는가?’에 고정된 질문을 ‘왜 한국전쟁이 일어났는가?’로 확장하고 그 기원을 해방 직후부터 추적한다. 1권은 해방부터 1947년까지를 다룬다. 여기서는 해방 직후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을 개괄하고 미군정과 인민위원회를 집중 조명한다. 특히 1945∼46년 한반도의 지방 단위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좌익 계열 인민위원회를 길게 서술하는데, 인민위원회는 이전의 한국전쟁 연구에서는 무시됐던 주제다.

2-1권은 당시 미국의 외교정책을 분석하면서 국제협력주의가 팽창주의로 나아간 과정을 드러낸다. 미국이 해방 이후 남한의 새 질서를 구축하면서 친일세력을 다시 기용하고 인민위원회를 적대한 이유는 팽창주의 때문이었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한국인들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커밍스는 1946년 9월·10월 봉기를 비롯해 1948년 제주 4·3사건, 여순반란, 전쟁 직전까지 이어진 유격대 투쟁 등을 살피면서 이런 봉기를 “해방된 한국의 체제에 불만의 절규가 쌓인 것”으로 묘사한다.

이어 북한 상황을 살피는데 북한이 당시 소련, 중국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검토한 부분이 흥미롭다. 북한을 장악한 김일성은 중국의 공산당을 지원하기 위해 국공내전에 부대를 파견했다. 커밍스는 “이것은 북한에 실전 훈련을 쌓은 가공할 군대를 양성했고, 미국이 한국의 내전에 개입할 상황을 막는 최후의 수단으로 중국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고 분석했다.

2-2권은 전쟁 직전의 상황을 다각도로 점검한다. 특히 한국전쟁 1년 전인 1949년 여름 옹진과 개성에서 일어난 국지전에 주목하는 데 대부분 한국군이 일으킨 것이었다. 커밍스는 이를 미군 철수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자신의 한국 문제를 지닌 채 혼자 남게 된 이승만이 선호한 전략은 전쟁을 도발하거나 38도선 일대에서 대규모 전투를 일으켜 한국에 군대를 계속 주둔시켜야 할 필요성을 미국에게 확신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커밍스가 북침설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커밍스는 2-2권 18장 ‘누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는가?’에서 남침설, 북침설, 남침유도설이라는 세 가지 모자이크를 검토한다. 그는 북침설에 대해서는 “검토할 가치가 거의 없다”며 “남한이 38도선 전역에서 대규모 공격을 시작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다”고 폐기한다.

그는 북한이 먼저 공격했다는 여러 증거들을 승인하면서도 북한이 무고한 적을 불법적으로 급습했다는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해방 이후 한반도의 좌우 대립, 전쟁 직전 남북의 잦은 교전, 미국의 패권적 개입 등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주류적 해석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커밍스가 책을 쓴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49년 6월 미군 철수 이후 한반도의 상황은 어느 쪽에서든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다면서 남한이 전쟁을 유도했다는 가설을 지지한다. 1987년 취재진의 거듭된 질문에 대한 짧은 답변에서 그의 보다 직접적인 생각이 드러난다. “1950년의 전쟁은 1949년에 발생한, 전쟁에 가까운 충돌과 직접 관련돼 있지만 1949년에는 정예부대가 중국에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남한은 싸우려고 했어도 북한은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대답했다. 1950년 중국 원정부대가 돌아왔을 때 북한은 남한이 먼저 도발하기를 기다려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했을 거라고 대답했다.”

커밍스는 미국 비밀문서와 1940년대 후반 남한에서 간행된 자료, 미국 국립문서보관서에서 발견한 북한 노획 문서 등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고 밝혔다. 책은 해방 이후 한국인들의 일제청산, 토지개혁, 통일정부라는 열망이 미국 및 친일세력과 충돌하며 비극적인 동족 전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꿰어내며 한국전쟁에 대한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해방 이후 전쟁까지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5년에 대한 세밀화이기도 하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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