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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작은 共’으로 민주주의 재구성하기

[책과 길]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최태현 지음, 창비, 416쪽, 2만3000원

지난 11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자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혼자였을 때 장애인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였으며 장애인단체와 같은 작은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모여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연합뉴스

민주주의는 효과적이지도, 매력이지도 않아 보인다. 민주주의자들은 답답하고 고루하고 우유부단해 보이기도 한다. 한 마디로 민주주의는 시원시원하지 않다.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원한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혼란을 수반한 정치적 사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냥 좀 강력한 리더가 나와서 세상을 정리해주길 바란다. 이것이 지금 세계적으로 권위주의 정부가 등장하는 배경이고,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말하는 현상이다.

여기서 대응은 세 갈래로 전개될 수 있다. 권위주의로 빠지거나, 기존의 민주주의를 답습하거나, 아니면 민주주의를 재구성하거나.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책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에서 세 번째 길을 모색한다. 그가 민주주의의 재구성을 위해 제시하는 키워드는 ‘마음’과 ‘작은 공(共)’이다.

민주주의의 출발점을 우리의 마음에서 다시 찾아보자는 저자의 주장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마음을 강조한 사람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민주주의 교육가 파커 파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앞장에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적어놓았다.

“인간의 마음은 민주주의의 첫번째 집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공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단지 생각만이 아니라 전 존재로 경청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의견보다는 관심을 줄 수 있는가?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용기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 시민을 신뢰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가?”


저자는 민주주의는 제도로 실행되지만, 민주주의의 근원은 우리의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주류적 논의로부터 가려진 세계를 이해하려는 마음, 진실의 불확실성과 제도의 불완정성, 타인의 불가해성을 인정하려는 마음, 작은 자로 살아가면서 민주적 책임을 나누어 지려는 마음, 동료 시민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 등을 ‘민주주의의 마음’으로 꼽는다.

‘작은 공’이란 저자가 창안한 개념으로 “개인으로 지나치게 쪼개지지 않고, 거대한 권력에도 흡수되지 않는, 참 좁고 아슬아슬한 중간지대에서 삶을 영위하는 작은 자들의 작은 모임들”이다. 작은 공은 아직 대표되지 못한 자들을 가시화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자들이 목소리를 내게 해준다. 저자는 장애인단체를 예로 든다. “혼자일 때는 그저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인운동의 최전방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함께이기 때문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작은 공은 우리를 지배하는 이념인 자유주의와 우리의 삶을 실제로 구성하는 공동체성 사이의 오래된 갈등을 통합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공동체는 때론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으로만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공동체가 없다면 개인의 자유도 지켜질 수 없다. 작은 공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가치를 함께 담아낸다.

저자가 마음과 작은 공을 제안하는 이유는 제도만으로는 민주주의의 역설과 한계, 불완전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앞 부분에서 대의제의 협소한 대표성, 투표로 선출된 정부의 자의적 정책 선택, 공무원들의 직업윤리 부재 등을 짚는다. 이 과정에서 참여민주주의나 능력주의 같은 쟁점도 살핀다. 특히 민주주의 제도 아래 간과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작은 자들’의 문제를 깊게 드러낸다.

저자는 민주주의의의 문제를 정부나 제도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는가 묻는다. “우리가 가슴이 미어지는 참사들 앞에서 정부가 어디 있었는지를 물을 때, 우리는 그러한 질문이 던져질 수 있는, 그 목소리가 공명하는, 그리고 그 목소리에 반응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공적 공간이 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민주주의는 해결책이 아니라 공적 인프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인프라 위에서 국가나 지도자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우리 삶을 살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마음과 작은 공동체를 실마리로 삼아서 민주주의를 재구성하자고 제안한다.

“이 사회의 주류적 논의에서 멀어져 있던 삶이 직면한 조건, 그로부터 나오는 목소리가 들려져야 할 공적 공간과 민주주의, 그리고 동료 시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중심으로 이 시대의 모습을 재구성한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책은 거대담론 위주의 민주주의 논의를 미시담론으로 이끈다.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고,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에 맞서면서 우리 마음에서 시작할 수 있는 민주주의, 드러난 세계의 민주주의 말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세계의 민주주의, 작은 자들의 다양한 공동체들이 만들어내는 민주주의를 상상해보자고 얘기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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